아들의 메모
아들의 메모
벤자민 잎사귀 사이로 흘러든 빛이 작은 물결처럼 거실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거실 의자에 앉은 나에게도 햇살이 스칠 때 나는 생각했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엄마가 내 이름을 잊는다 해도,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은 여전히 우리 사이의 단단한 연결이 살아 있음을.
엄마는 이제 스스로 대소변을 처리하지 못해 아기처럼 하루에도 수차례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 오늘도 나는 익숙하면서도 기계적으로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그런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엄마는 옆에 두었던 기저귀를 집어 들고는 세 번 접어 식탁 위에 올려두셨다. 그 모습을 발견한 순간, 내 안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짧은 순간, 엄마가 기저귀를 들고 나름의 방식으로 '숨기려' 애쓰던 모습을 떠올리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일까. 존재란 무엇일까. 기저귀 하나를 감추려는 엄마의 몸짓 속에서, 나는 오히려 살아 있음의 본질을 보았다. 그것은 수치심이 아니라, 여전히 ‘나는 여기 있다’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를 떠올렸다. 그는 인간이란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엄마의 행동 역시 혼돈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과 관계를 맺으려는 방식일 것이다.
뇌과학은 또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치매가 전두엽과 해마를 망가뜨리면서 기억과 판단은 점점 희미해져도, 감정과 습관은 뇌의 깊은 층위에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엄마는 여전히 나를 향해 미소 지을 수 있고, 손끝에서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과 감각의 회로는 기억보다 오래 버티는지도 모른다.
돌봄은 단순한 수발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존재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자,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더라도, 나는 엄마를 통해 인간 존재의 진면목을 배운다.
엄마가 창가에 앉아 석양이 내려앉는 하늘을 오래 바라볼 때면, 나는 마치 엄마가 속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 듯 느낀다. “저 구름은 왜 늘 흘러가는 걸까.” 아이처럼 단순한 물음 같지만, 사실 그것은 가장 깊은 철학적 질문이다. 존재란 왜 흘러가는가. 인간은 왜 여기에 머물러야 하는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현대 물리학까지 이어진 근원적 물음이 엄마의 눈빛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나는 엄마의 손톱을 다듬어 드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구름이 흘러가는 건, 바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도 늘 곁에 있지요. 엄마가 나를 잊으셔도, 내 마음은 바람처럼 곁에 있어요.”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미소 지었다. “그래, 바람은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그 짧은 대답은, 내 존재가 여전히 엄마에게 느껴지고 있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도시락 속에 담겨 있던 계란말이 냄새, 운동회 날 나를 향해 끝까지 흔들어주던 손, 감기 걸린 밤마다 이마 위에 얹어주던 손길, 피부병 때문에 자주 병원에 가야 했을 때도 걱정할까 봐 태연하게 웃어주던 눈매. 엄마는 지금 그것을 잊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의 증인으로 존재한다.
뇌과학자들은 기억을 ‘신경망의 흔적’이자 반복된 전기 신호의 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흔적이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존재는 기억이 아니라 감각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엄마의 손을 잡았을 때의 따뜻함, 그건 이름도, 사건도, 단어도 필요 없는 진실이었다.
가끔은 돌봄 속에서 웃음이 피어난다. 내가 엄마에게 “아버지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엄마는 “일하러 안나갔나? 오늘 늦게 들어올건가 보네”라며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여전히 기다리는 듯한 대답을 하셨다. 이어 내가 “그럼 아들은 어디 갔어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나를 똑바로 보며 진지하게 대답하신다. “가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고 서글퍼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밀려왔다.
인간은 단순히 기억의 총합이 아니라, 순간마다 빛나는 감각과 관계의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분명히 체감한다. 엄마는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지금-여기의 감각 속에서 세계와 관계 맺고 계셨다.
힘든 순간도 물론 많았다. 엄마가 내 이름을 잊고, 내가 누구인지 물을 때마다 가슴은 찢어졌다. 그러나 아주 가끔, 엄마는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참 좋다.” 그 한마디면 나는 다시 버틸 수 있다. 존재란 어쩌면 그렇게 단순한 것일지 모른다. 기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온기.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엄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 나는 끝까지 엄마의 존재를 지켜내겠다고. 웃음과 눈물 속에서, 철학과 과학의 질문 속에서, 그리고 돌봄의 일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