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엄마,
아침 창을 열자, 작년 민원에 의한 과한 가지치기로 팔이 거의 다 베어 나갔던 길가 은행나무가 또다시 부챗살 잎을 펼쳐 올리고 있었습니다. 상처 자국을 따라 새 순이 돋아, 잘린 자리마다 빛이 허락한 각도로 조용히 퍼져 있더군요. ‘자유’가 도망칠 넓은 들판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 잎에서 배웠습니다. 베어짐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쪽이지만, 존재하는 한 다시 자라나는 방향과 속도는 生이 스스로 고르는 응답—허락된 틈 사이로 빛을 향해 각도를 바꾸는 일. 돌봄의 한가운데서 내가 찾는 자유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바꾸기 힘든 규정과 시선은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오늘의 형편에 맞춘 간격과 리듬을 다시 고르는 힘. 잘려 나간 가지 끝에서 잎이 다시 피어오르듯,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가능한 것을 가만히 가르며, 우리 삶에 스며든 빛의 방향으로만 조용히 자라 가기로 합니다.
오늘은 손바닥에서 단단한 자갈을 데우듯, ‘자유’라는 단어를 오래 어루만지다 조용히 펼쳐보았습니다. 돌봄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묶인 사람’으로 느껴 왔습니다. 새벽마다 휴대전화기의 알람보다 먼저 나를 깨우는 것은 엄마의 목소리였고, 깊은 밤에도 엄마가 몸을 일으켜 내 방으로 오시면 나도 여지없이 일어나 불을 켜고 길을 터야 했지요. 그렇게 시침과 분침이 늘 엄마의 리듬에 맞춰 돌아가는 나날 속에서, 한때는 내 인생이 오롯이 ‘돌봄’이라는 무한궤도에 붙들려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무렵의 한 장면, 엄마와 제 하루의 페이지가 달라지던 날이 떠오릅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지요. “어머님께서 다른 어르신 간식을 본인 것인 줄 아시고 몇 차례 손을 대셨고, 그분은 자신의 것을 빼앗긴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십니다. 운영이 어렵습니다.” 항의와 통보 사이에 걸린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서둘러 찾아가 엄마의 상태를 설명드리고 여러 번 머리를 숙였습니다. 직원분들도 고의가 아님을 이해한다 하셨지만, 끝내 “운영상의 이유”로 등원을 멈춰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 설명과 사과가 당장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지요. 필요한 권익을 위한 조치라 여겨 수긍하려 애쓰면서도, 엄마의 하루가 문 밖으로 밀려나는 듯 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어깨를 누른 건 세 겹의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더 빨리 알아챘다면’ 하는 자책,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엄마의 몸짓이 ‘문제’로 불리는 순간 밀려온 당혹과 쓸쓸한 위축감. 여기에 당장 바꿔낼 수 없다는 무력감까지 포개져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때 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이 닿는 몫과 바람의 몫을 가려 보자.” 엄마의 병과 기억의 흐트러짐,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바람의 몫—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영역.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태도로 응답할지는 분명 제 몫이라 여겼습니다.
이 무렵부터 저는 ‘자유’를 두 겹으로 나누어 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누구에게도 잘려 나가지 않는 고유한 존재의 자유—가지가 베여도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고 해마다 새싹을 돋우는 은행나무처럼, 엄마와 저, 각자의 고유함이 계속 살아 흐르는 자유입니다. 이 바탕이 있기에 저는 엄마 곁을 택할 수 있었고, 엄마 또한 기억의 물살 속에서도 한 사람으로 서 계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면 그 누구든 세상의 모든 존재가 지니는 자유입니다. 존재하는 한 존재할 자유.
둘째는 관계 속에서 경계를 존중하며 행사하는 행동(선택)의 자유—다른 이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오늘 가능한 것을 고르고 조율하는 힘입니다. 주간보호센터의 요청 앞에서 제가 바꿀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두 번째 자유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낯선 곳의 규칙 대신, 엄마께 맞는 조용한 질서를 다시 세웠습니다. 속도를 낮추고, 간식을 나누는 순서를 바꾸고, 안내의 말을 더 짧고 부드럽게. 주간보호센터 대신 방문요양으로 계획을 바꾸며 집 안의 리듬을 새로 짰습니다. 그 변화는 ‘패배’가 아니라, 존재의 자유를 바탕으로 선택의 자유를 도모하는 새로운 일정이었습니다.
그러한 변화 이후 제가 행사하는 ‘돌봄으로부터의 자유’는 돌봄을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잘라도 다시 피어오르는 부인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의 자유를 기억한 채, 관계가 정한 경계 안에서 오늘 가능한 것을 정확히 가려 선택하는 자유입니다. 은행나무가 제 철에 잎을 다시 내며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듯 엄마와 저는 그렇게—존재의 존엄은 무한히 지키고, 선택은 현실에 맞춰 조율하며—하루의 페이지를 이어 가겠습니다.
외식에 나서면 또 다른 난처함이 따라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천장을 한참 올려다보시고, 커다란 기둥과 환한 조명이 눈에 들어오면 “대단하다”, “여기 왜 있노”, “우리 나가자”를 몇 번이고 되뇌십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슬며시 우리 테이블을 스치면 저는 먼저 자리를 정돈합니다. 앞치마를 목에 둘러드리고, 그릇을 손 가까이 옮긴 뒤, 미음처럼 부드러운 것을 골라 숟가락을 들어 봅니다. 그러나 식당에 들어온 이유를 잊었는지 엄마가 다시 “나가자” 하며 몸을 일으키시면, 저는 잠깐 볼일이 있다며 달래 보곤 합니다. 그 사이 엄마와 제 밥숟가락은 서서히 식고, 엄마의 기운과 나의 기운도 차가워진 음식 온도처럼 나란히 내려앉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여 오면, 저는 먼저 잠깐 멈춰 숨을 고릅니다.—바꿀 수 없는 흐름은 흘려보내고, 제 손이 닿는 몫만 다정하게 조율하는 태도요. 스쳐 가는 시선도, 엄마의 감탄도 바람의 몫이니 붙잡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고릅니다. 자리는 창가 끝으로, 음식은 더 부드러운 결로, 주문의 타이밍은 우리 호흡에 맞춰 천천히. 그렇게 손 닿는 것들을 조금씩 맞추면, 장면은 덜 거칠어지고 잠깐의 식사에도 머물 틈이 생깁니다.
‘지금은 쉬운 것부터’, ‘오늘은 반만’
내게 주어진 작은 레버들을 쥐고, 내 쪽에서 세계를 덜 요란하게 만드는 일. 그 안에서 ‘나의 자유’가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생겨납니다.
그 틈인 가족휴가제를 이용해 몇 번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숙소 예약을 완료하고, 출발 당일 방문요양 선생님께 세세한 부탁을 잘 드리고, 드디어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내 휴대전화 화면에서 우리 집 거실 화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CCTV의 작은 프레임 속에서 엄마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선생님이 컵을 건네는 모습을 확인하면 심장이 겨우 진정됐습니다. 자유를 얻으려 떠난 여행이, 역설적으로 더 단단한 ‘감시’로 나를 조여 왔던 순간—그것 또한 부끄럽지만 나의 진실입니다.
이 경험으로 나는 여기서도 배웠습니다. ‘관찰’은 안전을 주지만, ‘과잉 관찰’은 자유를 갉아먹습니다. 그래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확인은 두 시간 간격, 10초만. 이상 신호가 오면 즉시 전화, 아니면 화면을 덮기. 그 작은 약속 하나로 여행의 하늘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바다 냄새가 코끝에 닿았고, 모래가 발바닥을 눌렀고,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자유는 도망쳐서 얻는 게 아니라, ‘관찰의 간격’을 정해 주는 기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존주의는 우리에게 ‘존재의 던져짐’을 말합니다. 원하지 않은 자리, 뜻하지 않은 시간, 예고 없는 사건들—모든 존재는 종종 그런 세계 안으로 내던져집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엄마의 병이 시작됐을 때, 나는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세계로 들어왔고, 발을 뗐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존재지만 던져짐, 던져졌지만 존재함. 실존의 무게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두 경우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덜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말합니다. 우리가 ‘존재 상황’ 그 자체를 선택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존재 상황에 ‘응답하는 방식’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라고. 그 문장 앞에서 나는 내 선택을 다시 확인합니다.
“나는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자유입니다.
억지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내가 고른 한 문장. 나는 도망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습니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내게는 이 역설만이 내 삶을 설명합니다.
현상학의 언어로 말하면, 저는 엄마와 ‘세계-안-존재’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자유는 고립된 개인의 표어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빚어내는 하루의 질감’입니다. 엄마의 호흡과 제 손의 리듬, 걸음과 의자 사이의 간격, 빛과 소리의 세기—이 감각들이 맞물릴 때, 살 만한 하루가 천천히 짜여집니다.
저는 그것을 ‘구속’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는,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기서 자유는 무제한의 방종이나 방임이 아니라, ‘가능한 것들 중에서 선명하게 고르는 힘’으로 바뀝니다.
엄마, 그동안 저는 자유를 ‘언제 돌봄이 끝날까’라는 질문에서 찾곤 했습니다. 끝이 정해진 스케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을 버티곤 했지요. 그런데 돌봄은 생의 다른 일들과 다르게, 분명한 종결을 전제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내일의 상태도, 다음 달의 변화도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면, 나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연습해야 했습니다.
‘끝’이 아니라 ‘지금 가능한 여지’를 찾는 일.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저의 자유 목록들입니다.
시간의 자유 : 돌발이 많은 하루에도 반드시 확보하는 나만의 20분. 알람을 맞추고, 숨을 길게 쉬고, 차를 우려 마시는 시간.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 시간의 작은 방.
선택의 자유 : 외식 자리에서 “지금은 여기까지.”라고 내 쪽에서 멈추는 권리.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계속 버티지 않고, 우리에게 맞는 속도로 자리를 정리하는 용기.
해석의 자유 : 주간보호센터의 거부요청을 ‘비난’으로만 읽지 않고, 엄마에게 맞지 않는 환경을 발견한 신호로 바꾸어 읽는 일. 고쳐야 할 나의 부족보다, 바꿔야 할 환경의 배열을 먼저 보는 시선.
이렇게 하루를 다시 배치하고 나니, 자유는 자주 오고 짧게 머물렀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자유는 한 번에 오랫동안 붙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짧은 들숨’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어떤 날은 외식 자리에서 엄마의 큰 목소리에 당황해 제 숟가락이 공중에서 멈추고, 어떤 날은 CCTV를 닫지 못해 짧은 여행지의 풍경마저 흐릿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러면 답이 찾아옵니다. “자리 바꾸기.” “확인 간격 늘리기.” “메뉴 바꾸기.”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대답이 아니라, 오늘의 내 어깨를 낮추는 대답들. 그 작은 대답들을 고르는 일에서 나는 ‘돌봄으로부터의 자유’를 배웁니다.
돌봄을 버리고 도망치는 자유가 아니라, 돌봄을 품은 채로 틈을 만드는 자유. 엄마 존재 곁에 머물기로 결정한 나를, 내가 매일 새로 승인하는 내 존재의 자유입니다.
밤이 오면 엄마 방과 내 방 사이 거실에 희미한 빛이 깔립니다. 가끔 엄마가 문틈을 가볍게 흔들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불빛을 확인합니다. 시선이 서로를 스치며 시야 안에서 하루가 마무리되는 순간, 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내일은 이 불빛이 가리키는 쪽으로, 서로의 속도를 맞추어 한 칸 더 가보겠습니다. 다만 저는 내일의 나에게도 부탁합니다.
“오늘 가능한 만큼의 자유를 잊지 말자.”
그 자유는 엄마의 손등과 내 손바닥이 맞닿는 존재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요.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