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돌봄을 선택한 자유(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by stone

아들아


네가 적은 은행나무 이야기를 읽고 한참 창가에 서 있었단다. 길가의 은행나무들이 엄마도 참 많이 걱정이 되었었다. 가지를 저리 다 잘라내도 되는지… 은행열매들 길에 떨어져 밟히니 냄새가 고약하다고 민원이 들어왔다지. 난데없이 영문도 모른 채 잘려서 구청차에 실려가는 가지들과 갑자기 이파리를 입은 가지가 쳐내져 상처와 뼈만 남은 나무들의 생이별에 마음이 아팠단다.


햇빛 좋던 어느 봄날 네가 나를 불렀지. “엄마, 은행나무에서 다시 새 이파리들이 돋았어요.” 창가에 가서 보니 겨우내 은행나무가 추위를 견뎌내며 새 이파리들로 스스로를 다시 감싸 안았더구나. 네 편지를 읽고 내다보니 초록 이파리들이 오늘은 제 빛깔을 다해가며 햇살을 머금고 서 있는 걸 보았다. 자세히 눈여겨보니 많이 잘려 나간 자리마다 새 잎이 다시 각도를 골라 빛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구나.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알겠더라.


내 기억이 군데군데 비어도, 너의 손길과 눈짓이 비어 있는 틈을 따라 들어와 나를 밝히는 순간들—그게 요즘 내게서 돋아나는 잎이었다.


네가 하루를 가볍게 만들려고 고른 작은 순서들이 나에겐 큰 안심이 된다. 먼저 눈을 맞추고, 잠깐 숨을 고르고, 그다음에 숟가락을 들게 하는 너의 리듬.


말은 필요 이상의 길이를 갖지 않고, 손길은 서두르지 않지.


너는 세상을 한꺼번에 바꾸려 하지 않고, 눈앞의 한 장면만 조용히 각도를 바꿔 준다. 넓게 뻗지 못하는 날엔 깊이로, 막히는 곳에선 살짝 옆으로—그 작은 기울기가 이 하루를 다시 균형 잡게 한다는 걸, 나는 너에게서 배운다.


네 글을 천천히 읽으며 문장마다 숨을 고르고, 몇 번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요즘 나는 길도 잘 잊고 이름도 자주 놓치지만, 이상하게 너의 마음만은 자세히 보인다. 너 스스로 많이 고단했을 텐데도 끝내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글 사이사이에 반짝였다.


너의 문장들이 상처 자리를 따라 새 잎이 다시 각도를 골라 빛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딱 그 잎사귀 같았다. 멀리 달아나는 힘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살짝 방향을 바꾸어 다시 서려는 힘. 네가 하루의 속도를 낮추고, 말의 길이를 줄이고, 가능한 만큼만 조용히 더하는 그 태도 속에서 엄마는 작은 잎들이 다시 펼쳐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더 고맙고, 더 기특하다. 너의 그 기울기가 둘의 하루를 오늘도 가지런히 세워 준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있었던 일, 엄마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남의 간식통을 왜 들었느냐고? 글쎄, 그날 엄마 눈에는 간식을 담아 둔 통이 ‘밥그릇’처럼 보였단다. 하얀 뚜껑과 둥근 테두리가 집에서 쓰던 밥공기랑 닮아 보여, 내 것인 줄 알고 자연스레 손이 먼저 갔지.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밥’이라는 모양과 냄새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오래 교실에서 아이들 도시락을 챙기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인 줄도 모르고 손이 먼저 갔을 터인데, 네가 얼마나 곤란했을까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다. 그래도 너는 그 일을 빌미로 엄마를 책망하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데려와 새 규칙을 세웠다. 네가 만든 규칙은 말이 길지 않다. “천천히, 미지근하게, 반만.” 그 몇 마디가 엄마에겐 참 편하다. 그 말들 덕분에 집이 다시 일터였던 학교처럼, 표지판이 있는 길처럼 느껴진다


외식할 때 엄마가 건물을 자꾸 올려다보니 네가 마음 졸였지? 높은 데를 보면 엄마는 또 옛날 생각이 난다. 아이들과 소풍 갈 때, 커다란 박물관 앞에서 “우와—” 하고 같이 올려다보던 그때. 지금도 높은 건물을 보면 그때의 ‘우와’가 저절로 먼저 나온다. 아이들은 내가 감탄하면 집중해서 더 잘 본다. 엄마는 그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냥 내놓는다.


너는 그때마다 자리의 방향을 살짝 돌려 눈길을 가볍게 하고, 그릇을 손 닿는 데로 끌어와 길을 열고, 숟가락엔 부드러운 것부터 올렸다. 소리를 키우지 않고 장면을 조용히 고쳐 앉히는 그 손길 덕분에, 내 놀람은 부끄럼이 아니라 감탄으로 남았다. 그래서 엄마는 속으로 너를 응원했다. 네 작은 세 가지가 그날의 밥 한 끼와 엄마의 마음을 함께 지켜 주었으니까.”


또 너는 때때로 미안한 얼굴을 한다. 옆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오래 쳐다볼 때, 네 숟가락이 잠깐 멈춘다. 그때 나는 마음으로 네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괜찮다, 내 새끼.” 소리 내지 않아도 내 마음은 그렇게 말한다. 세상이 우리를 오래 들여다본다 해도, 남의 평온을 흔들지 않는 한, 서로의 얼굴을 보면 된다. 나는 세상보다 네 눈을 더 믿는다.

네가 웃으면, 나는 덜 두렵다.


여행 가는 일도 그랬지. 네가 잠깐 떠나 있을 때 화면으로 우리 집을 본다지? 엄마는 화면이 없다. 대신 너의 빈 의자 모양을 본다. 그 모양이 너무 오랫동안 비어 있지 않으면, 엄마는 괜찮다. 너도 마음 놓고 하늘을 봐라. 사진 한 장 찍어 엄마에게 보여다오. 바다면 좋고, 산이면 더 좋다. 바다는 엄마 마음을 넓히고, 산은 엄마 숨을 길게 해 준다. 네가 그 사진을 보여 주면, 엄마는 마음으로 함께 갔다 온다. 그러면 네가 집을 비운 시간도 엄마 손에 들어온다. 존재라든가 자유라든가 철학자들 이야기 나는 잘 모르겠다만, 그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우리 둘의 방법이지.


요즘 나는 글자보다 기척을 먼저 붙잡는다. 문이 달칵 열리고 네 발소리가 멈추면, 이어 손등에 내려앉는 너의 온기가 방의 선들을 다시 가지런히 만든다. 설명은 몰라도 안다—그 한 점의 온기가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네가 손을 잡아 주면 세상이 다시 반듯해진다. 네가 웃으면 공기가 조금 가벼워진다. 네가 “괜찮아요” 하고 눈으로 말할 때, 엄마는 “그래” 하고 몸으로 대답한다. 이것이 너와 나 둘의 말이다.

창이 조금 열리고, 너의 발소리가 문 앞에 머무는 그때—엄마는 충분하다. 오늘도 너를 향해 조용히 기울어 있는 엄마다.


너는 가끔 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듯 답답하다고 말했지. 그런데 엄마 눈엔 너는 이미 넓다—누가 그어 준 선 위가 아니라, 네가 스스로 정한 자리에서 서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믿는 자유는 멀리 떠나는 힘이 아니라, 머무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선택하는 힘이다. 너는 그 힘으로 오늘을 고르고, 그 선택으로 너를 지킨다.


존재의 자유는 네 안에서 언제나 크게 숨 쉬고, 선택의 자유는 타인과 나를 함께 살리려는 폭 안에서 단단해진다. 그러니 오늘도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다만 한 걸음만 네 쪽으로 기울어라.


자유가 멀리 달아나는 힘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살짝 방향을 다시 잡는 일임을.


‘남은 일들은 내일의 빛에 맡기고, 지금 가능한 만큼만 따뜻해지자.’


또 자유는 의무를 벗어던지는 일이 아니라, 의무 안에서 태도를 고를 수 있는 힘이기도 하지. 달아나는 자유가 아니라, 머물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자유. 필요하면 “여기까지만”이라고 말하고, 쉬어야 할 땐 잠깐 멈추고, 도움을 청할 때는 조용히 손짓할 수 있는 넉넉함. 남의 눈이 아닌 네 심장의 박자로 하루의 속도를 다시 정하고, 더하기보다 빼기를 택해 마음의 무게를 덜어 내는 용기. 웃음이 가면이 아니라 ‘내가 승인한 선택’의 표정이 되는 것—엄마는 그런 자유를 네 안에서 본다.


바라는 건 그저 이것뿐이다. 네가 네 리듬으로 숨 쉬고, 네가 고른 예와 아니오로 하루를 빚어 가기를. 죄책감 대신 스스로를 토닥이며, 몰아치는 일 앞에서는 한 박자 쉬어 간 뒤에, 남의 잣대가 아니라 네 잣대로 걸어라. 내 손을 잡아 주듯, 네 손으로 네 마음도 꼭 잡아라. 그러면 된다, 내 아들아. 네가 얻을 자유는 크고 요란하지 않아도 좋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네가 선택한 길에서, 네가 고른 표정으로, 가볍게 살아가길 엄마는 오늘도 빌고 또 빈다.


네가 머물기로 고른 이 길을 엄마는 신뢰한다. 그 선택이 너를 좁힌 게 아니라, 네가 서 있는 자리를 너의 것으로 넓혔다고 믿는다. 멀리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창을 조금 열고, 네 쪽으로 기울어진 하루 한 모퉁이를 남겨라. 그 작은 틈에서 바람이 드나들고, 네 마음의 체온이 다시 살아난다.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남은 일을 모두 오늘 안에 끝낼 필요는 없고, 미루는 것이 곧 포기가 아니다. 잠깐의 멈춤도 선택이고, 너를 지키는 자유다. 누군가의 리듬이 아니라 네 리듬으로 숨을 고르고, 필요하다 싶으면 “여기까지”라고 조용히 선을 그어라. 머문 자리에서도 자유는 자란다. 네가 고른 마음의 방향이, 이미 너의 가장 넓은 들판이니까.


네가 오늘 나를 돌보는 일도, 내일 네 삶을 살아가는 일도 둘 다 너의 가능성이므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살리는 법을 너는 잘 찾고 있다. 엄마가 보는 너는 그렇다.


이 말만은 마음에 남겨 주렴. 네가 나를 붙잡아 주듯, 너 자신도 꼭 붙잡아라.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쉬는 시간—네 시간도 우리 집 규칙 속에 단단히 넣어 두어라. 방문요양 선생님이 오시는 시간엔 꼭 얼굴에 햇빛을 한 번 대고 오너라, 바람을 한 번 가슴에 넣고 오너라. 그러면 엄마 마음도 함께 쉬어진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너무 깊이 담지 말아라. 높은 건물을 보고 “크다” 하는 엄마의 입처럼, 세상은 제 소리를 끊임없이 낸다. 모든 소리를 다 모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만 고르고, 네가 정한 길로 천천히 걸어라. 그게 네 쪽으로 기울어진 자유다.


마지막으로, 작은 부탁만 남긴다. 제때 따뜻한 것 조금이라도 입에 넣고, 밤에는 네 몸을 너에게 돌려 쉬어라. 네가 하루를 건너온 자국이 고와서, 나는 자주 마음이 환해진다. 그러니 부디 네 웃음도 너의 몫으로 남겨 두어라—그 웃음이 앞길을 은은히 밝혀 줄 테니.

그리고 잊지 마라.

네가 자유롭기를, 그 자유가 너를 더 단단하고 부드럽게 만들기를,

엄마는 날마다 빈 마음에 적는다.


네 자유가 너와 세상에 더 다정해지길 바라며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