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홀로 재활인가?

회복을 본향(本鄕)으로 한 재활 순례기②

by 서 치식

3년간의 병원 치료를 마치고, 일상에서 17년째 이어온 재활을 필자는 ‘나 홀로 재활’이라 부른다. 사고 후 세 번째로 옮긴 신촌세브란스에서 하프 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최종 목표로 세웠다. 장애를 얻기 전의 건강을 회복(回復)한다는 열망이었다. 하지만 고시생처럼 매달린 병원 치료 끝에, ‘회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병원 안에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프 마라톤 완주로 상징되는 ‘장애 이전의 건강 회복’은 애초부터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원장님은 학문이라는 간접 경험으로 재활 전문의가 되었지만, 나는 장애를 직접 경험 중입니다. 내 몸을 실험 도구 삼아 혼자 재활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면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병원 치료를 마치며, 하프 마라톤 완주를 완곡히 말리던 당시 재활 병원장에게 선전포고처럼 남긴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결연히 ‘나 홀로 재활’에 나섰다.


일상에서의 재활, 그리고 17년


나 홀로 재활에 나서며 제작한 응원가'아리아리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에 나서며 어린딸, 조카들에[ 아내 여동생까지 총 동원해 만든 동영상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함께한 든든한 나만의 응원가다.)


재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일상 복귀’면, 실생활에서 부딪는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병원의 배려를 벗어난 일상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왼 편마비인 내게는 세수, 면도, 단추 채우기, 화장실 이용, 신발 신기 등 모든 일상이 도전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엄하게 몰아가며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다.

그 20여 년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희망을 일궈낸 여정이었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날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어린 딸은 어느덧 당당한 숙녀로 성장했다. 장애인 늦깎이 공무원으로 시작해 정년퇴직까지 걸어온 길은, 누군가에겐 평범할지 몰라도 내겐 기적을 일군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그렇게 일군 ‘신경망의 회복’을 디딤돌 삼아 ‘나 홀로 재활’로 이루고자 했던 온전한 건강 회복과, 재활 유랑민으로 대표되는 재활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시하고자 한다.


회복의 과학: 뇌가소성과 뇌유래신경성장인자.

재활 중 내가 굳건히 지켜온 원칙이 있다. “어떤 운동이든,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강도와 많은 횟수로 무한 반복한다‘. 이론적 근거도 모른 채, 그렇게 해야만 건강을 회복할 거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엄격히 지켜냈다.

수험생 시절(계단 이용, 10.9).jpg 공무원 수험생 시절(2010.10) 도서관 계단을 이용한 스트래칭 모습. 공간만 확보되면 언제든, 어느곳에서건 틈새 시간 재활원칙 원칙..

그렇게 무작정 들이댄 재활에서, 최근 감각이 확연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Microsoft의 AI Copilot을 통해 그간의 재활 과정을 정리하고 검증하면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완전한 재활에 도전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홀로 재활’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발견했다:

뇌가소성(Neuroplasticity): 경험, 학습, 환경 변화, 손상 등에 반응한 뇌가 신경 회로와 구조를 변화시키는 능력. 이는 단순한 기능 회복을 넘어, 학습, 기억, 감정 조절, 창의성 등 다양한 인지 기능의 기반이다. 광의의 뇌가소성은 성장인자(BDNF 등)의 작용, 신경세포의 재생 및 측부 발아, 시냅스 가소성 (LTP, LTD 등), 구조적 변화 (수상돌기, 축삭의 변화 등)를 포함한다. 다음과 같은 성향을 가진다.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은 약해진다

반복은 변화를 만든다

도전은 뇌의 변화를 촉진한다.

뇌유래신경성장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 뇌에서 분비되어 신경세포의 성장, 생존, 그리고 연결 형성을 돕는 단백질. 특히 유산소 운동은 BDNF의 분비를 촉진해 뇌 회복과 인지 기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복적인 운동은 해마와 전두엽 등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BDNF 생성을 증가시키며, 이는 학습 능력, 기억력, 감정 조절은 물론 신경 보호 효과까지 제공하여 뇌 기능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7년 지켜온 나의 재활 원칙은 이 두 가지 개념과 완벽히 일치한다. 편 마비 부위의 감각이 회복된 뇌병변2급장애인 필자가 곧 이룰 하프 마라톤 완주가 병원 치료로 학습해 일상에서의 재활로 장애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객관적 증거가 될 것이다.


재활 유랑민의 현실

‘재활 유랑민’—입원할 병상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재활 환자를 말한다. 필자 역시 할로베스트(경추골절로 추궁절제술을 받은 상태에서, 가슴부터 머리까지 완전히 고정해 경추의 운동을 가장 견고하게 제한하는 보조기)를 착용한 채 퇴원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입원 시 다음 병원에 입원 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면 치료를 이어갈 수도 없었다. 병원마다 3~4개월로 입원 가능 일수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립재활원조차 입원 치료를 4개월로 제한하고 있었다. 지금도 입원 가능 기간은 존재하나 국가적 노력으로 질환별 시기별로 입원 가능 기간을 조정할 수 있는 등으로 일부 탄력적 개선이 이뤄졌다고 한다.

처음엔 정해진 입원 가능 일수에 따라 퇴원을 결정하는 횡포에 막연히 분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단순한 횡포가 아니라 장기 입원 환자는 의료보험 수가가 낮아지는 수지(收支)의 문제와 입·퇴원 간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병상과 인력을 확충해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거기에 재활 초기에는 보호자가 필요하기에 가족들의 일상이 무너져 가족 해체의 위험에 내몰리기도 한다. 필자의 갓 세 살 딸아이는 1년여 이모네를 전전해야 했으며 3년여 병원 생활 중에 두 가족의 해체를 목격하기도 했다.


재활 병실에서 뉴스를 보며, 우리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저세상 뉴스’에 지독한 소외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조차 없는 재활 환자의 현실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희망의 제안

‘나 홀로 재활’ 17년째, 필자는 비로소 재활의 큰 물줄기를 잡았다. 연달아 마비된 부위에 ‘감각‘이 살아나고 있어 원하는 대로 운동할 수 있는 부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하프 마라톤 완주로 증명할 ’완전한 건강의 회복‘은 이제 필자에게는 구체적 현실이다. 재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전문의도 반대했던 일, 그 누구도 시도조차 못했던 일이기에 자문은커녕 응원이나 격려 하나 없이 이룬 ’신경망의 회복‘이다.

매끄러운 돌 다섯 개와 돌팔매를 들고 거대한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막막함 속에서 시작한 ‘나 홀로 재활’은 건강 회복의 실마리를 찾고, 재활 유랑민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여정이 되었다.

병원에서 충분히 학습하고 훈련해 장애와 맞서 싸울 준비가 된 환자라면 누구나 유능한 전사로 거듭날 수 있다. 이들이 AI,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디지털 자원과, 체계화된 재활 프로그램이 마련된 국민체육진흥센터 등의 공공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각자의 일상에서 재활을 실천한다면, 질병에서 회복되듯 장애에서도 회복되거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다. 17년 나 홀로 재활로 ‘장애에서 회복한 첫 사람으로 필자가 앞으로 펼쳐나갈 주장이다. 장애에서 회복할 확실한 동기(動機)를 가진 재활 환자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연대를 연결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바로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재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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