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평생 유지될 수 있는 걸까?
그는 생각보다 일찍 회식을 끝내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오늘 뭐 했는지 수다를 떨었다. 나는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그는 옆팀 대리의 청첩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주위에서 한 명씩 결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팀에서도 너는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술도 마셨고, 주위 사람들도 하나둘씩 결혼식을 올리는 분위기고. 이 기세를 몰아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나랑 끝까지 함께할 생각 있어?"
분명 물처럼 조용히 흘러왔던 하루였건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질문을 했으니, 빨리 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나는 그와의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성은 정확한 대답을 찾아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그 한편에서는 그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끼어들었다. 나는 가끔씩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경향이 있다. 내 속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내 단점은 이 중요한 순간에 존재감을 나타냈다. "좋아". 이 와중에도 이성은 말하고 있었다. 진짜? 아직 잘 생각해보지도 않았잖아. 생각 없이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이미 말을 입술 밖으로 나온 후였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어야 했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찜찜함을 가지고 전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는 매우 기뻐하고 있었고, 그와 대비해서 나의 마음은 더 무거워져만 갔다. 그다음 날, 나는 내 실수를 빨리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멈추게 해야지. 내가 너무 급하게 말한 것 같으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해야겠다.
말실수는 쉽지만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처음부터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하거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상황에서의 나쁜 소식은 나쁜 상황에서의 좋은 소식보다 여파가 크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필요로 한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그날 이후는 이전과는 같을 수 없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탐색전을 하듯이, 소개팅을 하던 초기처럼 상대의 의사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빠른 결정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살 때 중요한 건 뭘까. 우리는 지금 아무 문제도 없고,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똑같이만 하면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달라질 게 없고, 그도 앞으로도 비슷할 것 같았다. 그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다. 자기 관리, 정돈, 요리 등 혼자서도 잘하고 있으니, 나와 같이 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 않을까. 옷정리는 나보다 더 깔끔한 것 같은데. 그에게 안된다고 할 큰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몇 달이 지나고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싸우지 않았고, 그와 나의 상황에서 변한 것도 없었고, 그를 만나고 온 날이면 좋았다. 그와 만나고 온 어느 날에 난 미래도 이렇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인생이 아닐까.
결혼이란 무엇일까. 그에게 '좋아'라고 했을 때 나의 생각은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인생이 너무 덧없지 않을까? 한번 사는 인생인데 시도도 해보지 않는다면 너무 재미없는 살삶이 아닌가. 내가 그에게 '아니'라고 했다면, 이 감정이 평생 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상대를 평생 같은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2년, 3년, 5년 동안 이어진 감정이라면 평생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해 볼 수 있는 걸까. 평생 유지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대를 향한 마음이 이전과 같지 않다면 남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와 평생 룸메이트로써, 동반자로서 적합한 사람인지를 판단해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에게 '나는 너와 평생을 함께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