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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아 Jul 31. 2023

04. 그는 좋은 남자친구야.

'그'라는 사람


언젠가 내 친구가 나에게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아직도 그가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대답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대답은 해줄 수 있다. 그는 '좋은 남자친구'였다.


그는 나에게 잘했다. 평일 내내 데이트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고, 주말 데이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금요일 저녁 술약속을 피했다. 그는 일로 밤을 새운 다음날에도 나를 보러 왔다.

쉬는 날이면 출근하는 나를 직장으로 태워다 주기 위해 집 근처에서 기다리곤 했다(내 직장은 집에서 2시간 거리다). 손에는 항상 샌드위치와 음료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샌드위치 쇼핑백 안의 편지. 나는 편지를 안 쓰는 편이라, 장문으로 적힌 이 편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여행이 좋았지만, 해외여행은 특히나 더 뜻깊었다. 그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간을 망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다고 말했지만, 숙소에서 쉬자는 나의 말에도 괜찮다며 밖에 나가서 놀고 오자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병원에 간 그는 몇백대의 병원비 청구서를 받게 되었다. 그는 많이 아팠었나 보다. 그가 아프다고는 말했지만, 얼굴만은 밝았어서 나는 그렇게까지 아픈지는 몰랐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는 너무 아파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많이 아픈데도 여행을 잘 마친 우리를 보며 나는 그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와 만나면서 나는 많이 바뀌었다. 딱딱한 나무토막에서 말랑말랑해졌다고 하면 될까. 사귀기 초반의 나는 우리가 사귀고 있는 게 맞냐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사귀고 나서도 이전과 너무 똑같아서, 사귀자고 한 것이 꿈이었나 싶었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내 주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걸 때면 왜 이렇게 목소리가 애교 넘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친구가 약속에 가있는 걸 까먹고 저녁에 전화를 건 날이면, 그는 같이 있는 친구들에게 목소리가 왜 이렇게 귀여워지냐고 놀림받았다. 자기들에게도 좀 귀엽게 해 보라는 핀잔을 듣고 돌아오곤 했다.


그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우리는 잔잔한 시간을 보냈다. 큰 일도 없고, 소소하게 만나서 밥 먹고 카페 가는 일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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