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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09. 2024

<사랑은 비를 타고> 무성영화가 소리를 타고 흐르다

<사랑은 비를 타고>, 진 켈리. 스탠리도넌, 1954

<사랑은 비를 타고>, 진 켈리.스탠리도넌, 1954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는 영화 속 영화로 돈과 리나가 출연하는 <결투 기사>의 촬영현장을 통해 무성영화의 특징과 유성영화의 특징을 대화의 형식처럼 번갈아 제시하며 유성영화의 보급으로 인해 변화한 영화적 특징들과 영화산업을 보여준다.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로 자본주의의 영향은 더욱 증대되었으며, 2차원 스크린이었던 영화의 공간은 3차원적 공간으로 변모하였고, 배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여배우 리나는 흔히 말하는 스타의 위치에 올라서 있지만, 유성영화가 성행하기 시작하며 배우로서 그녀의 위치는 위태로워진다. 영화에서 배우의 음성과 같은 음향이 중요해지자, 우아한 그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가볍고 얇은 음성이 그녀의 연기생활의 장애물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결투 기사>를 유성 영화로 전환하여 촬영하는 장면 중 마이크 사용에 서툴러 엉망으로 녹음된 그녀의 대사는 상영 전 시사회에서 관객의 큰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고 영화는 망신을 당하며 이로써 영화에서 음향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로 영화에 있어 청각적 요소인 음향이 시각적 이미지만큼이나 위치와 중요성이 증대된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무성영화의 특징 또한 드러낸다. 돈과 함께 영화촬영장을 다니는 코스모는 돈 앞에서 ‘Make’Em laugh’라는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음악에 맞추어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데, 열정적인 춤을 추는 한편 지나가던 자재에 머리를 맞거나 벽을 뚫는 등 어설픈 실수를 하는 그의 모습은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했던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춤을 추는 도중 그는 세트장에 놓인 복도 모양의 판을 타고 올라가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는 실제로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복도 공간이 2차원 평면적인 세트판이었음을 드러내며, 영화의 2차원적 성격을 보여주고(세트장과 영화의 2차원적 성격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슬랩스틱과 같은 몸짓으로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해당장면은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의 일치를 보여주며, 이러한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의 일치는 몸과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서사를 이끌어갔던 무성영화의 특징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한다.  

 곧이어 영화는 앞서 언급했던 돈과 리나의 <결투 기사>의 무성영화 촬영 현장을 보여주는데, 무성영화를 촬영하는 돈과 리나는 카메라 앞에서 사랑스러운 연인의 행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입으로는 서로의 잘못을 언급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대화를 나누며 언행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음향과 이미지가 상응하지 않는 모습으로 앞서 노래의 가사와 어울리는 춤사위를 선보였던 코스모의 춤 장면과 대비되는데, 이것은 음향이 이미지만큼이나 관객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유성영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무성영화에서만 가능한 특징이다. 

 해당 장면을 통해 무성 영화에서의 음향의 중요성이 부정되는 듯했던 영화는  이어지는 장면에서 무성영화 또한 유성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음향적 요소를 내포했음을 말한다. 유성영화가 성행하고 있으니 무성영화로 제작하고 있던 <결투 기사>를 유성영화로 만들자는 제작자는 그러한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스태프의 말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스템에 음향만 더하면 된다며, 스타인 돈과 리나가 말까지 한다고 하면 얼마나 더 많은 관객이 영화를 찾을지 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제작자의 말에 리나는 ‘언제는 우리가 말을 안 했나요’라고 답하는데, 유성영화로 전환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던 제작자조차 이를 부정하지 못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배우의 음성이나 효과음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나, 사람이 누군가의 부름에 놀란 표정을 보여주는 장면 등으로 나름의 방식으로 음향의 효과를 창출했던 무성영화의 특징을 상기시킨다.


 음향의 도입과 영화에서 음향의 지위 변화라는 큰 변화와 더불어 <사랑은 비를 타고>는 돈과 리나의 쇼윈도 로맨스로 배우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했던 상황을 보여주며, 음성적인 부족에도 불구하고 리나를 계속해서 배우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통해 스타 캐스팅 시스템의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의 후반부, 촬영 도중 초록색 옷을 입은 댄서가 돈 대신 보석을 내미는 남자를 따라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음향기술의 도입과 유성 영화의 보급으로 자본주의의 가치가 더욱 커진 것을 보여준다.

레드카펫을 밟는 돈과 리나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는 단지 무성영화와 다른 유성영화의 새로운 특징 혹은 무성영화의 한계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결투 기사>라는 영화 속 영화의 제작과정을 통해 무성영화와 유성영화가 가진 나름의 특징들을 번갈아 제시하며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시대로의 전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또한 유성영화의 영화적 특징뿐만 아니라 그것의 보급으로 인한 영화산업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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