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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an 09. 2024

"Carpe diem"나중을 위해 순간을 놓치지 말 것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나'를 포기하고 잃지 않길 바라며

 몇 달 전 지하철을 탔다가 우연히 인상 깊은 한 광고를 보았다. ‘많은 전자기기와 책을 보는 탓에 우리나라 청소년 대부분이 근시안이다.’라며 안경교정을 추천하는 광고였다. 시력이 약하여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아도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눈인 근시안. 나는 이 광고를 보고 근시안은 단지 시력을 말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 교육체제 아래 우리 사회 청소년들은 당장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 급급해 스스로 미래를 마음껏 상상해 볼 시간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잃어버린 시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의 모습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 <죽은 시인 사회>, 1989.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다양한 성향을 지닌 학생들이 등장한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으나 점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토드 앤더슨’,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늘 순종해왔지만, 이제는 스스로 꿈을 찾아가려는 ‘닐 페리’, 우연히 만난 소녀에게 빠져 사랑을 배우는 ‘녹스 오버스트리트’, 당차고 과감히 도전을 즐기는 ‘찰리 달튼’, 모범생이지만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가진 ‘리처드 카메론’까지 뚜렷한 개성과 성향을 지닌 서로 다른 다섯 소년이지만 이들에겐 키팅 선생을 만나면서 점차 내적인 성장과 변화를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년들이 다니는 학교, 웰튼 아카데미는 이름하여 ‘헬(Hell)튼 아카데미’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 전원 기숙사 생활은 물론, 엄격한 규율과 교장의 강한 통제 아래 학생들의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하는 명문 학교이다. 앞서 소개한 다섯 소년 역시도 의사, 법조인 등 흔히 부모님들이 원하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진로를 염두에 두고 입학한 학생들이다. 키팅 선생 또한 이 웰튼 아카데미의 우수 졸업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웰튼 아카데미의 교육방식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교과서와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시라는 문학을 통해 학생들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형식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줄 뿐이다. 키팅 선생의 남다른 교육방식은 영화의 초반부부터 드러난다. 첫 수업시간,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책의 서문을 읽게 하고는 어떻게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시에 하나하나 점수를 매기고 평가할 수 있겠냐며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라고 말한다. 엄격한 교육체제와 모범생이라는 틀 안에서 자라온 학생들은 책을 찢으라는 선생의 말에 당황하고 주저하며 쉽게 책에 손을 대지 못하지만 이내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책을 찢어나가기 시작한다. 주저하던 학생들이 하나둘 직접 손으로 책을 찢어가는 이 장면은 키팅 선생으로 인해 학생들이 점차 변화해 나갈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학생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 발걸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나에게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안겨준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을 고른다면, 나는 다음 세 장면을 뽑고 싶은데, 첫 번째는 키팅 선생이 수업시간에 시 발표를 주저하는 토드를 이끌고 앞으로 나가 내면에 있는 생각들을 자유로이 뱉을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다. 어느 날 키팅 선생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토드에게 숙제로 직접 써 온 시를 발표해보라고 하지만 토드는 숙제를 하지 못했다며 자신이 써온 시를 감추려 한다. 그런 토드의 모습을 본 키팅 선생은 토드를 교탁 앞으로 데리고 나가 칠판 위에 걸린 사진을 보고 연상되는 것들, 그냥 지금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주저없이 말하라고 하는데, 토드는 쉬이 시도하지 못하고 망설이지만, 이내 키팅 선생의 적극적인 유도를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과감히 내뱉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소설『데미안』의 한 구절을 연상하게 했다. 매사 소극적이고 주저하던 토드가 그동안 자신을 한정 지었던 틀을 처음으로 깨고 나와 더 큰 세상을 맞닥뜨린 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물쭈물 조금씩 말을 내뱉다 키팅 선생의 열정적인 지도로 점차 과감하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토드의 모습을 보면 보고있는 나까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을 맘껏 소리 내어 뱉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전에 쑥스럽다는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아쉬운 기회들을 후회하게 된다. 이 장면을 담은 카메라의 앵글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빙글빙글 돌며 빠른 속도로 흔들리는 카메라앵글은 당황스러운 상황 속 자신조차도 처음 접하는 낯선 모습에 혼란스럽기도, 벅차기도 한 토드의 마음이 더욱 잘 전달되게 해준다. 마치 이러면 안 된다는, 난 이렇게 행동할 수 없다는 평소 토드의 이성적 자아와 그보다 더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그의 시적 감수성, 묻어두었던 자유로운 상상들이 충돌해 소용돌이처럼 뒤섞인 채로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직은 창피하고 두렵기도 한 토드지만, 내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이 장면을 보며 나는 그가 이 일을 계기로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길 바랐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닐 페리'의 모습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닐 페리의 죽음을 담은 장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린 연극이지만 그 무대조차도, 자신의 진심조차도 아버지에게 철저히 무시당하자 닐 페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다. 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의 내면이 엿보이는 차분하고도 온화한 표정과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묘사되었던 그의 죽음 때문이었다. 닐이 죽기 전날 밤, 닐은 아버지의 말에 더 반박하지 않고 그저 차분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이 장면에서 나는 닐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진심을 보여주었음에도 아버지에게 통하지 않자, 체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나 제 뜻을 이루지 못해 불만스러운 얼굴이 아닌 닐의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와 순종적인 미소에서는 이 집안 내에서는 더는 내 힘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도, 아버지가 정해주지 않은 다른 미래도 없다는 것을 느낀 닐의 좌절과 체념, 그리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그의 모습이 느껴진다. 가족 모두가 잠든 사이 그는 아버지의 서랍 속에 숨겨져 있던 권총으로 서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연극 <갈매기>에서 ‘코스챠’라 불리는 남자주인공 뜨레쁠레프는 극의 마지막 즈음 서재에서 자신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그의 사망 장소가 서재였다는 점, 그 죽음이 자살이었던 점, 권총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닐의 죽음과 유사하다. 그래서 나는 닐이 생을 마감한 장면을 보며 <갈매기>의 뜨레쁠레프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고, 영화에 설명되어있지는 않지만, 닐이 비록 현실에서는 아버지로 인해 연극이라는 소중한 꿈에 다가가지 못했어도, 영화 속에서 그의 죽음을 유명 연극의 한 장면처럼 표현함으로써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만큼이라도 연극을 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한 꿈을 이루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학교를 떠나는 키팅선생을 배웅하며 아이들이 하나둘씩 책상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었는데 특히 아이들의 태도와 그것을 담은 카메라의 시선이 인상 깊었다.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점은 토드가 책상 위로 가장 먼저 올라섰다는 것이었다. 토드는 영화 초반, 키팅 선생의 수업방식을 수용하는 것에 가장 많이 망설이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가장 먼저 책상 위로 올라가 “캡틴 오 마이 캡틴(Captin, Oh my captin!)”을 외치는 것을 보고 있으니 토드가 키팅 선생으로 인해 변화했음을, 한층 성장했음을 눈에 띄게 체감할 수 있어 벅찼다. 아이들이 책상 위로 올라갈 때까지 로우 앵글(Low-angle)로 아이들의 하반신과 그 사이로 보이는 놀란 교장의 당혹한 표정을 담고 있던 카메라는 아이들이 모두 올라선 후 하이쇼트(High-angle Shot)로 전환된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라선 소년들이 바라보는 시점에서의 키팅 선생의 모습을 비추는데, 이를 통해 소년들이 이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주체성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뒤이어 카메라는 키팅 선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소년들의 모습을 담는데, 이를 통해 변화한 소년들의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는 키팅 선생의 마음 또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영화임에도 상황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교실에 있던 학생들 중 일부만이 토드의 행동에 함께 참여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책상에 올라가지 않은 학생들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묵묵히 교과서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점에서 새로운 사상에 찬성하고 따르는 쪽이 있다면 그에 반대하는 쪽 역시 존재함을, 새로운 사상에 동의하지만 행여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두려워 동조하지 못하는 다수 또한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어인상 깊었으며, 33년 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사회와 지금의 사회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 언급한 것들 외에도 닐의 죽음을 키팅 선생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학부모와 학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이 서명하도록 강요하는 교장, 가부장적인 가정과 사회적 격차 등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우리의 양심에 손을 얹어보게 하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교사와 학교,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정말 누려야 하는 건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사는가?’.

그리고 외친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걱정하는 대신 용감하게 하고 싶은 꿈들을 펼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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