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 월곶면 애기봉으로 향했다. 강화도 방향으로 30분 즈음 달리자 해병대 부대가 나타났다. 5분만 더 가면 딸아이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나온다. 3년 동안 주말마다 딸아이를 데리러 간 월곶면은 우리 부부에게 낯익은 곳이다.
애기봉은 남북이 대치한 군사지역으로 방문하려면 사전 예약이 필요했다. 1시 30분으로 예약해 둬서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김치찌개와 솥밥을 주문했다. 건너편 식탁에는 해병대 군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체구가 아담한 여군도 있었는데 앳된 얼굴이었다. 우리 딸아이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밥을 먹고 애기봉으로 다시 출발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해병대 위병소에 다다랐다.입장권과 신분증을 확인한 군인들이 우리 차를 통과시켰다. 산속 길을 조금 올라가자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이 나왔다. 친절한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우리 부부는 관람 동선을 정했다.
먼저 문화해설사가 설명하는 이 지역의 역사와 유래를 들었다. 아담한 강당에 스무 명 즈음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강당 맞은편은 전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바깥풍경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곧 방문객들은 연세가 지긋하신 해설사의 옛날 얘기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다. 해설사 분은 고향이 강 건너 북녘 개풍 마을이라면서 아직도 몇몇 친척들이 살고 있을 거라고 쓸쓸하게 말했다.
통유리 아래로 흐르는 강은 조강 ( 祖江 )인데 이름 그대로 자식과 손자 강뻘인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한탄강 등 크고 작은 일곱 개의 강들이 모이는 할아버지 강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조강 건너편이 전부 북한 땅이라는 사실이다. 고작 1.4 km! 썰물일 때는 걸어서도 건널 수 있는 거리다. 뛰어가면 5분도 채 안 걸릴 것 같았다.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 육안으로도 강 건너 북녘 마을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훤히 보였다.
해설사의 오백 년 전 병자호란 시절 기녀,애기와 평안감사의 로맨스 얘기도 애틋했다. 청나라로 잡혀간 감사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북녘땅이 잘 보이는 곳에 관을 세워 묻어 달라는 애기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사실 일제 강점기 기차가 배를 대신하기 전까지 조강은 상선과 교역선으로 활기를 뛴 곳이었는데 한국 전쟁 이후 이름마저도 잊힌 지역이 되어버렸다.
애기봉 조강 전망대로 올라갔다.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은 북녘땅이었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요리조리 살피는데 마을과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염소 떼를몰고 가는 사람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경운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
집에서 고작 30 여분 차로 달리면 이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저들도 우리처럼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