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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pr 14. 2024

러브레터

왓칭

딸아이가 집에 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대학 다닐 때는 자취를 했다. 딸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로 방안에 모처럼 생기가 돈다. 아내와 딸아이는 전화와 문자로 자주 연락하는데도 서로 할 말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몇 년 만에 단발머리를 한 엄마에게 딸아이는 연신 젊어 보인다고 칭찬을 한다. 아내의 얼굴이 하얀 목련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아내는 우리 세 식구가 관람할 연극표를 스케줄 근무를 하는 남편 일정과 딸아이의 스케줄을 조율해서 예매했다. 주로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봤었는데 이번엔 마곡에 있는 엘지아트센터였다. 공연명은 '러브레터'.

인기 있는 중견 배우 ( 정보석, 하희라, 박혁권, 유선 )가 남녀 두 명씩 짝을 이뤄 공연하는데 아내는 박혁권과 유선 조합을 택했다. 아마도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원더풀 월드'에 박혁권 배우가 출연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달걀 장조림, 갈치구이 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마곡으로 출발했다. 성인이 된 딸아이를 늘 그래왔듯이 우리 부부 좌석 사이에 앉혔다. 잠시 후 관람석 주위가 캄캄해지면서 연극 무대에 조명이 집중되었다. 딸아이가 들고 온 연극 팸플릿을 미리 훑어본 덕에 줄거리를 대충 알 수 있었고 남자 주인공 앤디가 책과 글을 사랑한다는 점이 나와 비슷해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편 여자 주인공 멜리사는 글보다는 그림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영혼. 50년에 걸쳐 주고받은 두 사람의 러브레터를 배우들은 감정을 이입해 연기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느낌이었다. 얼마 전 김상운 저자의 '왓칭'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내 현실은 내 마음의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라는 관찰자 시점으로 연극을 관람했다. 내 육신을 둘러싼 감정과 생각을 무한한 마음 저편 속으로 놓아주면서 말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이따금씩 올라오면 그저 들여다보기를 했다. 그럼 천천히 사라진다.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이제 알 듯하다. 수시로 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나 자신으로 착각하고 살아왔다. 감정과 생각을 비워 진짜 나인 무한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야겠다.


오늘은 우리 세 식구 딸아이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 애기봉을 가 볼 생각이다. 한 달 전 즈음 망원경으로 봤던 조강 건너편의 북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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