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생각
01. 수치심과 자기혐오의 상관관계.
저마다 예민하게 감각하는 감정들이 있다. 요즘 나는 수치심을 예리하게 느낀다. 남이 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 태도 하나에도 수치심을 찾아낸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만 스쳐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수치심은 내 안에서 매끄럽게 스치고 씁쓸한 고통을 남긴다. 감정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이 감정의 이름을 오랫동안 이름 붙이지 못하고 데리고 있다가 최근에야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줬다. 나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자기혐오의 화살 역시 수치심에서 기인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비로소 윤곽을 찾은 감정 덕에 내가 어디에서 수치심을 느끼는지 파악하기 쉬워졌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은 수치심을 데리고 살았는지 알게 되자 아연해졌다.
내가 남을 볼 때, 나는 부러운 부분을 먼저 찾아낸다. 멘탈, 마음가짐, 재능, 실력, 하다못해 옷 입는 센스까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나에게는 없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게 발달했다. 그리고 이런 부러운 마음은 곧 수치심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중간에 내릴 수 없는 무한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사람이 된다. 부러움에서 시작해 수치심의 언덕을 지나 끝없는 자기혐오로 추락한다. 이 과정이 너무나 빠르고 정신 없이 반복되어 내가 지금 수치심의 언덕에 있는지 자기혐오의 나락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엉켜버린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내지도 잘라내지도 못한 채로 거울에 비친 내가 너무나 불만족스러워 보여 입술만 삐죽 내민 사람이 된다. 이런 나에게 크게 저항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입술만 삐죽.
그래서 거울을 볼 때마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나를 마주한다.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비난의 말을 내뱉고, 윽박지르며 조급한 마음에 채찍질하는 내가 있다. 당황스럽다. 저렇게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윽박지르고, 폭력적으로 비난하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거울을 보는 나도 거울에 비친 나도 서로를 미워한다. 마음챙김, 명상, 심지어 세계의 손꼽히는 성인들조차 나를 사랑하라는 조언을 하던데... 저걸 어떻게 사랑하지?
나도 거울을 삐딱하게 보고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나를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조각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 조금은 이해가 된다. 둥글고 무던한 나로 만족하기로 서로 합의했다면 이런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의도는 알았으나 방식이 잘못됐다. 어렸을 때에는 나를 학대하는 자아도 그만큼 작아서 괜찮았지만, 이제는 몸집을 키우고 있다. 부러움을 느낄 상황은 더 많아지지만 즉각적인 성과로 드러나는 일을 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사회적 시간과 내면의 시간이 서로 싱크가 맞지 않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채찍질을 하고 있다. 아프다. 썅.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아와 싱크를 잘 맞춰야 한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건 내 면역계 하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학습된 마인드셋을 지금 당장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여친 달래는 남친 전법으로 학대하는 자아를 살살 달래 내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야. 그만 좀 때려...
02. 피할 수 없는 '성인 되기'
성인(聖人) 아니고 성인(成人) 되기는 이제 정말 피할 수가 없다. 성큼 다가오는 25년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24년도가 워낙 최악이었기에 25년으로 빨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25년, 내가 스물 다섯 살이 되는 해다. 평소에 나이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도 않고, 뭘 하기에 늦은 나이가 없다고 믿는 편이기도 하나... 스물 다섯, 이제 정말 성인(成人) 되기를 미룰 수가 없다.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건 내 오랜 소망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선택해야 하고 책임지는 것이 '어른'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솔직히 무서웠다. 내가 선택하면, 나는 당장 내년에라도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수 있다. 내가 선택하면, 나는 당장이라도 마케팅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선택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고 거지가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하면.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설레기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 일단 나는 그런 쫄보 어른이 됐다.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보니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좁고 어려운 미로가 아니라 허허벌판, 망망대해였다. 이건 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이제 내 취향은 어렸을 때 영향을 받았던 것들에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읽고 보고 듣고 입은 것들에 의해 정해진다. 내가 나를 오롯이 만들 수 있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 공황과 패닉. (이딴 거 인생에서 처음봐 진짜 너나 해)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다. 뭐 이런 인생이 다 있지? 남들은 다 이런 부담감을 지고 살고 있는 건가? 모든 것에서 배움을 찾고 성장하고 있는 건가?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 건지 포켓몬처럼 벌써 정한 건가? 남들은 자기가 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건가? 남에게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내뱉는 물음표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일단 걸어가본다. 이게 맞나? 스읍, 하며 의심하는 한숨을 내뱉기도 하고, (무신론자지만) 세상을 이렇게 만든 절대자 내지는 신을 흘겨보면서. 일단은 터벅터벅 걸어가긴 한다. 참 불평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