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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May 07. 2024

딸아이의 물음이 닿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0년 전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엄마와 마주치면 하는 말이 있었다. 

  “엄마, 회사 그만두면 안 돼?”

  내 대답은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교육비와 문화생활 등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며 설득하기 일쑤였다.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허전했을지에 대한 헤아림은 없었다. 아이의 말이 내 직업을 포기시킬 만큼은 아니라 생각해 무시했다. 그렇게 딸아이의 던진 말들이 내 가슴에 닿을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응원하는 정부 정책이 늘어나고 있지만, 육아맘이 체감하는 시간은 여전히 느렸다. 운 좋게 공조직에 있었던 나조차도 일·가정·육아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중심 잡기는 늘 아슬아슬했다. 바빴고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잔무처리에 사무실 책상 옆 유리창의 배경화면이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컴퓨터 화면을 끄는 날의 연속이었다.


  

 큰아이는 고1이었다. 아들 녀석이다 보니 표현은 서툴지만, 엄마 마음을 안 다는 듯이 별다른 요구사항이나 투정이 없었다.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들어온 아들을 말없이 꽉 껴안아 줬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집에서 아들과의 평범한 만남이 그렇게 감격적이고 눈물이 난 건 세월호가 아무런 대책 없이 가라앉는 화면이 주는 그날의 먹먹함 때문이었다. 아들과 딸의 시간 속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시간도 익어갔고 여전히 바빴다.

  2022년 ‘현타’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상관없는 말인 줄 알았다.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가 3월과 6월에 있었다. 지방공무원으로서 적지 않게 치러본 선거였지만, 기본적인 업무 외에 늘 소소하게 챙길 것이 많은 법정 업무가 끼어든 해였다. 선거 시스템 점검과 선거인 명부 출력 등으로 늦은 퇴근과 주말 초과근무가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배부하는 유인물과 선거를 위한 장비, 인력, 예산 등을 챙겨야 하는 바쁜 업무 속에 내가 있었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국이어서 챙겨야 할 방역물품들은 분주함에 분주함을 보탰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시간 또한 지나갔다.



  

분주함의 보상처럼 8월 초, 길지는 않았지만 짧은 여름휴가를 낼 수 있었다. 8월 8일 휴가 이틀째 날 오랜만에 집에서 쉼표를 찍고 있었다. 해마다 예사롭지 않은 폭염과 장마를 겪으면서 기후위기가 근심거리가 된 지 오래되었다. 주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공무원에게 날씨에 대한 감각과 마음가짐은 더 남다르게 다가왔다. 심상치 않은 집중폭우가 퍼붓는 하늘을 걱정하던 찰나에 이미 직원 단톡방은 긴박한 대화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급한 마음에 차를 몰고 반포대교를 막 건너는 순간, 무섭도록 내리는 빗줄기와 맨홀 뚜껑이 쉴 새 없이 춤을 추는 광경에 공포감까지 밀려왔다. 도착한 근무지 청사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오래된 낡은 동청사의 좁아터진 배수구는 쏟아지는 폭우의 양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옥상에서 역류한 물은 승강기 쪽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미 직원들은 물먹은 솜이 되어 힘겹게 계단을 오르며 양동이와 물걸레, 양수기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저지대 주택의 주민들은 양수기 대여를 위해 쉴 새 없이 동청사를 방문하는 상황에다 주요 문서가 보관된 서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은 멘털 붕괴 그 자체였다. 그 시각 청사 밖의 주택과 도로상황은 상상했던 대로 더 안 좋았다. 잊지 못할 나의 여름휴가는 미완성으로 끝이 났다. 


  오래도록 재난지원금 지급업무로 혼란의 시간은 흘러갔다. 쉴 틈 없이 지나간 시간 속에 재난과 힘겨움의 정도는 부서와 조직의 업무에 따라 체감의 차이는 있었다. 기획부에서는 하부조직 직원들의 마음 근력이 얼마나 소진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슬기롭게 극복하는 상황만을 연출하기 위한 기획 의도에만 급급해 보였다. 시시각각 도착하는 부서 메신저의 빈 붙임문서는 보다 빠르게 데이터를 채워 나가야 할 조바심의 산물이 된 지 오래였다. 상부조직의 시간이 빙산의 일각이라면 하부조직의 동동거림은 수면 아래의 보이지 않는 얼음덩어리처럼 숨 막히게 가려져 있었다. 알게 모르게 나의 마음 근력도 서서히 녹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가 공강을 이용해 목요일 저녁에 올라왔다가 월요일에 내려가기로 했다. 내 업무 스케줄을 모르는 남편은 대뜸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서 광릉 수목원에 가자고 했다. 눈치를 보느라 선뜻 답을 못하고, 미루는 내게 예약 통보 전화를 하며 던진 한마디다.

  “뭐가 그리 맨날 바쁜 거야. 혼자서 일 다해? 가족과의 시간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인 걸 기억해.”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남편의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기한이 며칠 안 남은 보고서가 있어 주저하는 나에게 남편의 한 마디는 거절할 수 없는 울림이었다.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상사를 뒤로 하고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복무 시스템에 하루 연가를 올려놓은 채 서류를 덮었다. 


  나처럼 식물을 좋아하는 딸과 딸바보 남편과의 평일 수목원 데이트는 힐링이었다. 나의 30년 공직생활을 돌아보는 늦은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했다. 미움받을 용기로 낸 하루의 휴가는 삶의 방향을 나답게 결정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타인에게 자문할 필요가 없다. 어떠한 조직도 나의 미래를 대신 걱정해 주지 않는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자기 판단과 가족에 대한 다시없을 시간이 소중하다는 반가운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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