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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멈추고, 감동은 오르고

by 초록맘

다른 작가의 브런치스토리를 읽다가 옛 추억을 소환했다.

글의 요지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보수공사를 계기로 비자발적인 걷기 운동을 하게 되면서 작가의 삶을 성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비슷한 소재와 연관된 상황을 나의 20년 전 육아맘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로서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 3년 차 되던 해였다.

둘째인 딸아이를 낳자마자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일과 육아를 위해 직장 가까운 곳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었다.

처음 살던 곳의 전세계약이 만료되어 같은 아파트 옆동 23층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당시 6살 아들과 3살 딸아이의 보육기관과 등하교 동선을 최대한 고려해서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박육아의 아침 출근은 늘 전쟁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집밥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유치원 가방의 준비물을 확인하면서 벽시계를 째려보던 루틴의 연속이었다.

지금처럼 육아휴직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워킹맘의 치열한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순발력과 감각이 그 시절만큼 빨랐던 적이 있을까 싶은 숨 막히는 워킹맘의 하루였었다.

동이 늦게 트는 겨울철이면 아이들의 눈꺼풀은 더 무거워졌고 동작도 느려졌다.

등에 업은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아파트 현관문 앞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짧은 숨을 토하곤 했었다.

비몽사몽인 딸아이를 아파트 내 어린이집에 맡기고 길 건너 큰아이의 유치원으로 향했던 서른 중반의 내 모습이 숨 가쁘게 기억난다.




직장에서의 퇴근은 다시 집에서의 출근을 거꾸로 감은 시간의 반복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유치원의 아들을 하원시켜서 다시 어린이집의 딸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였다.

순간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깜깜했고 ‘고장 수리 중’라는 글귀만 야속하게 나와 마주쳤다.

23층인데... 어린아이가 둘인데...


돌발상황에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주변엔 나의 걱정과 근심을 편 들어줄 어느 누구도 없었다.

믿을 사람은 6살 아들과 3살 딸이 전부였다.

특히 딸아이가 과연 몇 층까지 혼자 힘으로 비상구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딸아! 엘리베이터가 아파서 고장이 났데..

우리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갈 수 있겠지?”

“응”이라고 말하는 딸의 대답에도 믿음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최대한 10층까지 만이라도 혼자 걸어 올라가 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비상계단 쪽으로 아장아장 걷는 딸을 보며 조금씩 올라가는 층수를 보고 놀라움에 눈이 커졌었다.

1층, 2층, 5층, 10층, 15층, 20층!

엄마의 고단한 마음이 딸에게 전달된 것일까?

단 한 번의 투정도 없이 20층까지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오른 것이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남겨진 3개 층의 계단은 딸을 가볍게 업고 올랐고 드디어 23층 집 앞에 도착했다.

딸에게만 온 신경이 쓰였던 터라 뒤 따라오던 아들은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아들이 큰大자로 눕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나중에는 10층 아래 아파트에서 살아요!”

아들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하며 셋이서 소란스럽게 끌어안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마터면 극기훈련이 될 뻔했던 엄마에게 20층 계단은 어린 딸이 허락해 준 선물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감동은 올라갔던 잊지 못할 육아맘의 퇴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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