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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잠든 그곳에 가면...

by 초록맘

음력 5월 9일은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달력이 6월로 바뀌면 아버지 생각 곁으로 내 마음이 성큼 다가간다.

지난 주말에 둘째 오빠네는 아버지를 먼저 뵙고 온 모양이었다.

올케언니가 보낸 카톡 사진에는 친정부모님 산소 봉분에 초록잔디가 예쁘게 덮여 있었다.




친정의 제사는 있다가 없어진 지 오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큰올케 언니의 예상치 못한 마음의 병이 생긴 후였다.

지금은 종교적 믿음으로 완쾌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는 큰 올케 언니를 보면 기적 같다.

덕분에 제사대신 매년 부모님이 계신 경춘공원을 4남매가 직접 찾아뵙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친정부모님 두 분의 기일인 6월과 11월은 물론이고 특별한 감사의 날에도 부모님께 발길이 향한다.

형편에 따라 함께 또는 개별로 찾아뵙기 때문에 관심이 더 빈번해서 흐뭇하다.




아버지 기일 하루 전날에 우리 가족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때마침 6월 3일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임시공휴일인 덕분이었다.

일정상 사전투표 대신 본투표를 마친 아들도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서울을 벗어나 먼 산의 푸른 풍경이 가까워지면 부모님을 향한 애틋함 속으로 들어간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북한강의 보석 같은 윤슬을 보면 천천히 그리움도 피어난다.

낯익은 경춘공원 표지석이 보이면 반갑게 좌회전 깜빡이를 켠다.


입구로 들어서면 깔끔하게 포장된 진입로와 정비된 시설물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과거의 비포장 좁은 도로를 지나는 운구차량 안에서 서러운 눈물마저도 흔들렸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분뇨 냄새나던 축사도 사라졌고 아슬아슬했던 도로에 안전난간도 설치되었다.




묘원 관리사무소 앞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맨 꼭대기층까지 차로 올라갔다.

바위언덕이 병풍처럼 가림막이 되어주는 곳 바로 아래에 친정부모님이 나란히 누워 계신다.

생전에 반지하 빌라에서 사셨던 두 분은 마지막에 뷰 좋은 최고층에 입주를 한 셈이 되었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데 묘지의 위치가 의미심장하고 아이러니해서 왠지 먹먹했었다.


지금은 추가로 묘지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같은 모양의 가족납골묘가 줄지어 조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부모님 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아이컨택이 되곤 한다.




주차를 하고 차트렁크에서 준비한 음식과 돗자리를 꺼냈다.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향한 반가운 대화를 시작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엄마! 저희 왔어요.. ”


며칠 전 다녀간 둘째 오빠네 덕분에 석재테이블은 깔끔했지만 다시 깨끗이 닦고 과일과 오징어포와 한과를 올렸다.

그리고 특별히 챙겨 온 시상식판넬인 상금보드를 가운데 올려놓았다.

얼마 전 딸이 ‘한류데이터페어 대학(원) 생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시상식에서 받아 온 것이었다.

친정아버지가 그토록 예뻐하던 외손녀의 자랑거리가 놓이자 두 분의 소리 없는 칭찬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두 분께 술잔을 올려놓고 보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젓가락을 빠트리고 안 챙긴 것이었다;;!!

그 순간, 과일 먹을 때 쓰려고 준비한 포크 생각이 났다.

결국 젓가락을 대신해서 스테인리스 포크가 뻘쭘하게 접시 위에 놓였다.

남편은 "장인어른이 뭐라고 생각하시겠냐"며 내게 핀잔을 주었지만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 아버지, 엄마는 내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소박하고 조금은 어설픈 상차림 앞에서 외손주를 키워주신 친정부모님께 간단한 근황토크를 시작했다.

외손자는 졸업 후 취업을 했으며 외손녀는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해서 입상을 했노라 실컷 자랑을 했다.

모든 게 두 분의 보살핌 덕분이라는 감사도 잊지 않았다.


두 분이 잠든 그곳에 가면...

언제나 철없는 막내딸이 되어 감사와 사랑으로 부모님을 목놓아 부르게 된다.

연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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