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뇌구조를 혼자서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딸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말이다.
아마도 절반이상은 딸에 대한 생각의 말풍선이 차지하겠다 싶었다.
훌쩍 커서 대학생이 된 지금도 애정의 크기는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부녀의 하루는 마치 톰과 제리 같다.
남편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딸의 방문을 열어본다
“우리 돼지(딸의 애칭)는 몇 시에 잤을까?"
비몽사몽인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딸은 쏜살같이 이불을 덮으며 능청스럽게 피한다.
늦게 잠들었을 딸을 괜스레 깨우지 말라는 나의 당부는 통한적이 없다.
저녁 회식으로 술냄새를 풍기는 날이면 딸이
“아, 진짜 귀찮아...”라고 중얼거리며 더 많이 투닥거린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남편은 또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웃음 짓게 만드는 딸의 반응에도 남편은 그저 좋단다.
톰이 제리를 미워한 적이 없듯이,
남편은 딸이 아무리 차가워도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나 보다.
오늘은 토요일, 주말아침이다.
아침 7시쯤 일어난 남편은 딸의 방문을 열고 느닷없이 말했다.
“ 딸아! 아빠랑 운동 가자!”
“ 딸아! 같이 밥 먹자!”
여전히 꿈속에 있는 딸에게 닿을 수 없는 폭풍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못 말리는 딸바보 남편의 모습이다.
더워지기 전에 일찍 운동을 하겠다는 남편이 기특해서 재빨리 아침식탁을 차렸다.
콩나물냉국과 꽁치김치찌개를 메인으로 해서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을 때쯤 딸도 나타났다.
부스스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딸이 식탁에 털썩 앉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 꿈에 아빠가 여러 번 방에 들어와서 이러쿵저러쿵 너무 귀찮게 했어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말들을 마구 퍼붓는 거야!"
맞은편 식탁에 앉은 남편이 모른 척 웃기만 했다.
못 말리는 아빠와 딸의 유치한 톰과 제리식 화법이 화살처럼 식탁 위를 날아다녔다.
어느덧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을 때쯤이었다.
딸은 반찬 뚜껑을 덮으며 식탁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평화로운 식사가 잘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남편은 딸의 볼을 꼬집으려 했고 순간 피하려던 딸이 식탁 위에 있던 멸치액젓통을 넘어트린 것이다.
남편이 콩나물냉국에 얼음을 추가하면서 싱겁다며 멸치액젓을 넣었었다.
뚜껑을 열어둔 채 식탁 위에 세워 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딸의 운동에너지에 밀린 멸치액젓 통은 여기저기 흥건한 액체를 토하고 쓰러져 전사했다.
순간, 쿰쿰한 액젓 냄새가 사방에 퍼지면서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식탁과 바닥을 닦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식탁밑에 깔아 둔 돗자리에 스며든 냄새는 또 어쩔 것인가...
예정에 없던 주방의 바닥 대청소와 세탁으로 한바탕 아침소동이 벌어졌다.
겨우 세탁한 돗자리를 아파트 옥상에 널고 돌아와 보니 우리 집 톰과 제리는 거실 소파에서 나란히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세상은 변했고, 아빠들도 바뀌었다.
지금의 딸이 받는 사랑은 내가 어릴 적에 꿈꿨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처럼 취향마저 닮은 두 사람이 내 눈에는 늘 철없는 캐릭터로 낯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