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가 있는 어느 일요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점심으로 외식을 결정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 앞에 섰는데 남편이 대뜸 제안을 했다.
“아들! 네가 운전해 봐라
운전은 자꾸 해 봐야 늘지”
“그럴까요 아빠?”
아들이 겁도 없이 운전석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아들의 낯선 행동에 내 마음이 더 비장해지는 순간이었다.
목적지는 자주 갔던 단골 설렁탕집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장소였지만 남편의 말에 마음의 거리감이 확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들은 주말을 이용해서 10시간의 운전연수 예약을 한 상태였다.
토요일부터 외부 전문강사로부터 2시간씩 운전연수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오늘 오전에도 강변북로를 달려 월드컵경기장까지 다녀왔다는 따끈한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고작 총 4시간의 운전연수 경력에 선뜻 운전석을 아들에게 넘기는 남편이 되려 대단해 보였다.
나 같으면 엄두가 나질 않았을 텐데 말이다.
최근에 신입사원이 된 아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부랴부랴 운전면허증을 따고야 말았다.
그동안 절실함이 부족했던 아들의 운전면허취득은 남들보다 꽤 오래 걸렸다.
학과시험이나 기능시험 유효기간을 몇 번이나 놓쳐가며 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성격 급한 엄마로서 이해가 안 되는 답답함이었지만 꾹꾹 참았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생소한 ‘실내운전면허 연습장’을 등록했다는 말에는 낯설고 어리둥절했었다.
실내골프장도 아니고 운전을 실내에서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물었던 나였다.
운전 시뮬레이션 기계에 탑승해서 스크린을 보며 운전연습을 한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었다.
요즘은 최첨단 VR기술을 이용한다니 세상이 참 달라졌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보니 시험에 여러 차례 재도전을 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도로주행시험에 합격을 하고 면허증 발급까지 아들의 개인적 서사는 길었다.
처음으로 운전석과 조수석을 바꿔 앉은 두 남자를 보고 내 마음이 다급해졌다.
엊그제 미리 ‘다이소’에서 사두었던 초보운전 자석스티커를 급히 찾았다.
트렁크 바깥쪽 좌우에 식별이 잘 되도록 붙이며 뒤따르는 운전자의 인내와 양보심을 부탁해야 했다.
남편은 노파심에 기어위치부터 사이드미러와 룸미러까지 소심한 체크와 설명을 이어갔다.
뒷좌석에 앉은 나는 언제든지 끼어들 잔소리를 준비한 채 대기 중이었다.
남편과 나는 여느 때 보다 재빨리 안전벨트와 밀착했다.
아들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조금씩 떼자 스르르 움직이는 자동차가 당연한 건데 신기했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주택가 일방통행로를 지나니 큰길이 나왔다.
다행히 일요일이라서 차량이 많지 않아 초보운전자에겐 좋은 도로 컨디션이었다.
초보운전자를 영어로 'Sunday driver'라고 부르는 이유가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핸들을 잡은 아들은 아빠, 엄마의 예민한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척 조심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운전연수를 받은 교육효과 때문인지 걱정했던 돌발상황은 없었고 무난한 운전이었다.
뒷좌석에서 핸들을 꼭 잡은 아들을 보고 있자니 거울처럼 나의 초보운전 시절이 생각났다.
지금의 아들과 비슷한 20대에 빨간색 경차의 작은 핸들을 잡고 있던 내 모습...
초보운전자로서 첫 출근을 앞두고 전날 머릿속으로 운전 경로를 수십 번 되뇌던 기억...
그 당시엔 지금처럼 차량 내비게이션이라는 똑똑한 녀석이 없었다.
신호대기 중에 창문을 열고 옆차량 운전자를 향해 간절히 방향을 묻던 어리숙했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익숙하고 아는 길도 그토록 무섭고 벅차서 소심한 심장을 혼자서 껴안아야 했었다.
결과적으로 아들에게 운전석을 넘겨준 남편의 선택이 옳았다.
부모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했다.
조언과 잔소리보다 처음을 먼저 건너온 사람으로서 겸손을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성장판처럼 열린 아들의 운전과 사회생활을 조심스럽게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