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빗소리는 백색소음과 아주 거리가 멀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린 파주 글램핑장의 숲 속 깊은 밤은 시끄럽고 소란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화살처럼 지붕에 내리 꽂혔다.
하우스형 텐트 안에서 듣는 굵은 빗방울의 낙차와 밀도감이 굉음으로 번졌다.
무섭도록 퍼붓는 빗소리에 남편의 코 고는 소리조차 묻혀버렸다.
그렇게 2박 3일 가족휴가는 집중호우에 흠뻑 점령당하고 말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던 2주 전에 여름휴가에 관한 질문과 대화가 오갔었다.
남편은 7월 중순을 생각하고 있었고 회사 휴양소 중 한 곳에 예약신청을 하겠다며 얼버무렸다.
알바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딸 때문에 서둘러 남편은 가족 채팅방에 날짜와 당첨된 숙소링크를 올렸다.
‘파주 ○○ 프리미엄 글램핑장’이라고 올라온 사진에는 하우스형 텐트 내부가 보였다.
“앗 불사!
더운 여름에 리조트도 아니고 캠핑장이라니..”
어쩐지 의견조율도 없이 조용히 추진하던 남편의 의도가 의심되는 결과였다.
남편은 평소 캠핑 유튜브 시청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펑펑 내리는 눈 위에서 또는 빗속 캠핑장에서 장비를 조립하고 배치하는 캠퍼들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곤 했었다.
한 번쯤은 남편의 로망에 동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애써 못 마땅한 서운함을 접었다.
하필 출발하는 날부터 휴가기간 동안 줄곧 비 예보가 이어졌다.
배정받은 프리미엄 글램핑장에 주차를 했을 때는 잠시 비가 소강상태였다.
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드리워진 하우스형 텐트가 나타났다.
데크 앞에 놓인 바비큐그릴 장비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궁금증을 숨긴 입구 쪽 방충문을 열자 길쭉한 나무 테이블과 캠핑의자 4개가 눈에 들어왔다.
냉장고와 밥솥, 스테인리스 식기와 냄비들이 보였고 휴대용 가스버너 한 개가 덩그러니 보였다.
침실공간으로 구분된 또 다른 방충문 안에는 더블베드 2개와 간단한 집기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개수대뿐만 아니라 욕실과 화장실이 내부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숙박을 하면서 외부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 개수대를 이용하는 번거로움이 현실로 닥쳤다.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에 너무 기대하고 안심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굽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운치도 있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설거지와 꿉꿉함을 씻을 장소까지 가는데 몸과 마음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매번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겨 캠핑장 모퉁이를 돌아서 걸어가야 했다.
거리상 멀지는 않았지만 투숙객이 거의 없는 으슥한 분위기 때문에 혼자 갈 엄두가 안 났다.
특히 깜깜한 밤이나 새벽에 화장실 신호가 오기라도 하면 딸과 공동운명체로 움직여야 했다.
딸은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했다.
한 번은 화장실 세면대 밑에 꼽등이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캠핑장 방충문에 붙은 나방 한 마리와 눈싸움을 하며 대치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우연히 캠핑장 주변 산책을 하다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프리미엄 글램핑장' 보다 업그레이드 버전인 '럭셔리 글램핑장'이 위쪽에 있었던 것이다.
“엄마! 저기는 전자레인지도 있어
욕실도 따로 있고 냉장고도 훨씬 좋아 보여 ㅋㅋ”
마침 장맛비도 내리는 데다가
수직구조의 글램핑장 위치가 영화 '기생충'의 계층구조를 떠 올리게 해서 웃음이 났다.
남편이 주도한 글램핑 휴가는 의도치 않은 불편함과 빗소리와의 동거였다.
익숙하고 당연한 편리함에서 잠시 거리 두기를 하고 아파트형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감사'가 더욱 선명해졌다.
있고 없음, 멀고 가까움, 비 오고 맑음, 시끄러움과 조용함 등에 대한 상대적인 행복감이 차 올랐다.
익숙함을 흔드는 2박 3일의 소소한 불편함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니 감사의 안경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