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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워수 Mar 12. 2024

[비행일기] 나영석 피디까지 아는 유럽인 동료

한류 격세지감



해외 출장이 많은 아빠를 쫓아 90년대 초반 ~ 2000년대 중반까지 싱가포르, 홍콩 미국 등으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까지였네요.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흔치 않았던지라 외국에서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없었던 건 물론이고 현지인들은 당연히 우리를 일본인이라 생각했다. 한 번은 동물원에서 나랑 동생을 데리고 온 엄마에게 일본 사람이지? 하며 일본어 브로슈어를 줘서 나 혼자 잉잉 울었던 기억도 난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우리 엄마가 어떻게 일본 사람이에요! 이러면서.

어느 날엔 길에서 우리 말고 또 한국말하는 사람이 지나가서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우와!! 하고 뒤돌아보기도 했었다. 지금이랑 엄청 다르죠?


싱가포르 센토사 섬

 

싱가포르랑 홍콩은 일본문화 J-wave 가 한창 휩쓸 때라 침사추이며 오차드로드며 여기저기 일본 물건, 일본 가게가 정말 많았다. 길거리엔 온갖 일본 의류 생활용품 전자기기 브랜드들, 슈퍼마켓에 가면 숟가락부터 과자까지 헬로키티나 세일러문이 안 그려진 게 없어서 여기가 일본인지 홍콩인지 한참 구경하곤 했다. 싱가포르 타워 레코드를 꽉 채우고 있던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킹키키즈 등등의 앨범들도~

어딜 가도 made in Japan이 가득했는데, 한국 물건이나 한국 가게는 저 구석에 가끔 하나 있을까 말까 했다. 미국에서도 일식당은 메인 로드에 여러 개 있는데 한식당은 서버브 변두리까지 한참 차 몰고 가야 겨우 하나 있었고 심지어 맛도 없었다. 일식당엔 외국인들이 가득한데, 텅 빈 한식당에서 어린 나이었지만 뭔가 안타깝다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다시 방문한 싱가포르 타워레코드 그리고 그곳에 떡하니 놓여있는 나 아는 얼굴! 보아의 발렌티 앨범이었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여전히 빽빽한 일본 가수들 사이에 꽤 크게 보아 코너가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사 와서 시디 플레이어에 넣고 야자 시간에 엄청 열심히 들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때쯤부터 아시아권을 시작으로 슬슬 한국 문화가 퍼진 것 같네요.


그때 샀던 보아 씨디

 

2015년 독일로 처음 건너왔을 때, 한국에 대한 서양 사람들 인식이 달라졌다는 건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한국 비행/음식/패션/드라마 좋다고 하는 크루들을 종종 만나니 참 신기했다. 외국 문화를 쉽게 접하는 크루들이야 그렇다 쳐도 음식에 매우 보수적인 일반 독일인들조차 “나 한국 식당 몇 번 가봤어~비빔밥 말고 다른 거 추천해 줘” 라질 않나 “그 한국 영화 좋더라” 이런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우와 했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근 십 년의 시간이 지날수록 놀랄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일단 나 사는 베를린에 일본 만화, 음반을 파는 가게만 있었는데 삼 년쯤 전에 새로 한국 아이돌 굿즈 파는 가게가 오픈했고 우아한 한식 파인 다이닝까지 군데군데 생기고 있다.

일할 때 보자면, 부사무장이 11살짜리 자기 딸 태권도 선수라고 국기원 기념품 사가야 되는데 온라인 주문 도와달라고 하질 않나, 비행 후 오프 때 가족들 다 모이는 바비큐 파티 할 건데 김치 어느 브랜드가 좋아?라고 묻는 뮌헨 사는 짝꿍도 있었고. 자기 딸이 BTS랑 블랙핑크 좋아해서 한국 비행 따라오는 게 소원인데 말 잘 듣는 거 봐서 데려오겠다 했더니 숙제를 그렇게 열심히 하더라며 상으로 이번 비행에서 BTS 물건들을 샀다고 보여준 크루도 있었다. 작년에 같이 비행했던 40대 중반 독일인 여자 동료가 나영석 PD까지 안다고 했을 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세븐틴이랑 방탄 예능 찍은 그 피디 있잖아 맨날 자기 얼굴 비추는 그 피디~”라고 운을 뗐는데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한류/한국문화에 대한 내 또래 유럽인들의 관심도는 나 중학생 때 외국 문화가 퍼져있던 정도랑 비슷한 것 같다. 엔싱크를 아는 사람만 알았던? 한 반에 3-4명 정도만 그들의 음악을 직접 구매해서 듣고, 그 외 6-7 명 정도는 라디오 등에서 음악이 자주 나와 노래 한 곡 정도 알고 나머지 친구들은 아예 관심이 없고/모르는?

그래도 그 3-4 명의 한국에 대한 열정이, 나영석 피디를 알 정도로 정말 깊은 것은 사실 그리고 라이트 한 관심 및 시도를 해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는 외국에서의 한국 포지션과 지금의 그것은 정말 다르고, 덕분에 외국 사는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뿌듯하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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