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일기] 총 들고 타는 승객이 있다고? SPEQ
SPEQ
또 다른 항공용어 SPEQ - Sports Equipment의 약자다. 브리핑 노트에 이 글자 있으면 오늘 운동 장비 있는 운동선수들이 타는구나 하면 된다.
경기하러 가는 선수들(과 그 팀)을 태워갈 때 좋은 점은 일단 술을 잘 안 드신다는 것 히히
보통 내 비행엔 규모가 큰 국제 대회 하러 가는 선수들이 많이 타서, 경기 앞두고 컨디션 관리하느라 주류는 거의 안 드시는 것 같다. 코치진이 와인이나 맥주 한두 잔 하는 정도? 그러면서 비행 내내 노트북으로 경기 영상 보고 선수 훈련 영상 보고 하는데 와 왜 이리 멋있는지!
국대 유니폼 보는 재미도 있다.
최근엔 강릉 동계 청소년 올림픽 때문에 스위스 독일 벨기에 아르헨티나 등등 다양한 나라 선수들을 인천으로 태워왔다. 곧 같은 경기장에서 대결할 라이벌일 테니 탈 때부터 서로 살짝 의식하는 듯한 분위기에 유니폼 빼입은 모습이 참 멋졌는데 젤리랑 과자 들고 타서 비행 내내 냠냠 먹는 모습이 십 대 맞군 싶어 귀여웠다. 특히 스위스 팀 모자가 너무너무 깜찍해서 저 멀리서 사진도 한 장 찍어놨네요.
유니폼 비니가 너무 깜찍했던 스위스 국가 대표들랜딩 할 때 사무장이 다들 부상 없이 좋은 경기 하길 바란다고 방송한 걸 내가 한국어로 다시 옮겼는데, 선수들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들었겠지만 진심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길 바랐다. 한국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돌아갔길…
벌써 6년 전, 평창 동계 올림픽 할 때도 한참 유럽 북미 남미 선수들 등등 한국으로 많이도 태워갔는데 카타리나 비트랑 카티 빌헬름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2018년 초 인천공항카타리나 비트는 독일 피겨 레전드 선수인데 은퇴 후 김연아 선수 경기를 잘 해설해 주기로 유명해서 알고 있었다. 그때도 아마 피겨 중계하러 한국 갔다 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내 존 승객이 아니었고 그날 만석이라 너무너무 바빠 말할 기회가 없었지만 멀리서도 느껴지는 아우라와 우아한 뒤태가 인상적! 카타리나 비트 담당한 크루 왈 정말 나이스한 승객이었다고 했다.
카티 빌헬름 선수는 이륙 전 기장이 와서 악수까지 청하길래 누구지 검색해 보니 바이애슬론 선수였다. 비슷한 종목 하는 운동선수 친구가 있어 잽싸게 메시지 보내 물어보니 정-말 유명한 선수라고..
이 분은 내 승객이셨는데 비빔밥 처음 먹어본다 해서 내가 어떻게 먹는 건지 설명해 드리고 나중에 어땠냐고 물어보며 간단한 대화 나누기도 했네요. 역시 엄청 젠틀하셨던 기억이다.
그리고 이 글 제목을 탄생하게 해준 비행한 날 이야기-
비행 한지 열 번도 안 됐을 초짜 시절 어느 날 브리핑 때 사무장이 “There will be some passengers with gun in the belly” 이래서 복대 같은 거에 총 들고 탄다는 얘긴 줄 알고 내가 깜짝 놀라 “What? Is that possible?” 하니까 사무장이 빵 터지더니 “No not in their belly, airplane belly” 래서 누군가 하고 봤더니 반가운 이름 사격 진종오 선수였다. 그래서 SPEQ 로 총이 분류됐던 것.
이 사람 World record holder 고 한국인들은 다 알아 라고 하니 다른 크루들이 와 대단하다 이래서 괜히 으쓱한 내 마음! 비행 중에 가서 살짝 인사도 드렸었네요.
또 몇 년 전에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양궁경기하러 가는 한국팀을 모셔갔다.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저도 베를린 살아요 하니 바로 하시는 말씀 “결승전 보러 오세요~”
게임 시작도 전인데 결승 진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 너무 멋졌다. 친구들이랑 태극기 흔들러 가고팠으나 일정이 맞질 않아 못 갔는데 두고두고 아쉽다.
이번 여름 파리 2024 올림픽 시즌에도 아마 선수 몇 팀 태워가지 않을까 싶다. 선수+코치들은 물론이고 취재진이랑 관광객 등 해서 만만석에 짐까지 꽉 들어찰 생각 하면 벌써부터 힘들지만 누가 타려나 두근두근하다.
카타리나 비트
카티 빌헬름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D%8B%B0_%EB%B9%8C%ED%97%AC%EB%A6%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