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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워수 Mar 20. 2024

[비행일기] 독일인 신입 두 명이랑 비행한 날

삐약 삐약


이제 막 윙 달고 (교육 졸업하고) 세 번째 비행한다는 신입 독일인 삐약이들이랑 같은 갤리에서 일을 했다.

10년 차 나랑 내 짝꿍 25년 차 승무원, 주방 담당한 20년 차 부사무장까지 총 다섯 명이서 이코노미 팀이었다.


옛날 옛적 퍼스트 클래스 디저트


우리는 맨날 밥 먹고 하는 게 이거니까 착착 잘 굴러가는데 신입 동료들은 당연하게도 안 그랬나 보다. 승객들 빵 안 주고 포장지 안 벗겨서 주는 등의 소소한 실수부터 두 번째 서비스 시간 맞춰 밥 데우는 거 까먹는 꽤 큰 실수도 하고 그 외 등등에 레이오버 동안 호텔에서도 세면대 물 받는 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해보다 다쳐서 손톱이 다 날아갔다 어쩌고저쩌고~

사실 신입일 때 다 할 수 있는 실수고, 신입이니까 실수해도 되는 거고, 사무장 부사무장 포함 아무도 뭐라 안 했는데 둘 다 im a total mess 이러면서 완전 풀 죽어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나의 신입시절 ㅋㅋ 340 도어 3에 음료카트 잘못 놨다고 나한테 ㅈㄹ한 동료도 있었지만 진짜 진짜 첫 비행 때 커피 필터 어떤 모양으로 어디다 끼는지 “자 지금은 물 마실 타이밍이야” 하고 진짜 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줬던 짝꿍이며 분명 내가 실수했는데 너의 생각 방식이 역시 다르다며 자기가 배워야겠다고 말해준 사무장이랑 나한테 너 진짜 신입 맞냐고 왜 이리 잘하냐고 했던 아드리아노(너무 잘생겼어서 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이름이랑 얼굴이 생생하다) 방송 처음 해본다고 달달 떠니까 쿨하게 대신해주신 선배님도~


다정하고 착하고 인내심 깊던 나의 동료들! 어리바리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잘하고 있나 싶은 순간들에 빛이고 소금이었던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날의 스벅 구름


잠시 추억여행하다 현실로 돌아와서 그 둘에게 진짜 괜찮다고 말해줬다. 나도 세 번째 비행할 때 밥 데워야 하는데 오븐 시간 계산 잘못해서 큰일 날 뻔했었어. 그때 부사무장은 나한테 뭐라고 했었지만 나는 너네한테 안 그럴게 왜냐면


It‘s hard to be pretty and smart at the same time.. It took me 10 years

동시에 예쁘고 똑똑하기 힘들어 나도 십 년 걸렸어


하니까 둘 다 빵 터지며 웃는다.


비행 끝나고 마지막 인사할 때 찐하게 허그하면서 Soo you are my spirit animal! 이라고까지 하면서 아까 해준 말 집 가서 엄마한테도 전달할 거라고 하는 귀염둥이들!


내 입에서 이런 말도 나오고, 신입 동료들한테 저런 말도 듣고 오래 일 하긴 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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