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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워수 Jul 02. 2024

[비행일기] 10년 비행하면서 두 번째 운 날



 인천에서 출발하는 우리 비행기에 휠체어 타고 탑승하신 80대 정도로 보이던 할머니 손님, 체구도 엄청 작고 마르셨는데 매니큐어 곱게 바르신 거랑 단정한 옷차림이 참 인상적이었다.

원래는 복도 좌석을 배정받으셨는데 창가 쪽으로 바꾸고 싶다시길래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여쭈니 “남들한테 방해 안되게 밥도 많이 안 먹고 물도 조금만 마시고 가만히 앉아갈 거예요~” 하신다. 무슨 소리세요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주시고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했다. 다행히 창가 승객이 복도 좌석으로 바꾸는 것도 괜찮다 하고, 이 분 거동이 불편하시니 화장실 가거나 할 때 협조 부탁한단 말에도 흔쾌히 오케이~



비행 중반쯤에 사무장이 갑자기 메디컬 있대서 뭐야 뭐야 하니까 어머 아까 우리 할머니 손님.. 몸이 갑자기 안 좋으시다길래 걱정됐는데 심각한 병까진 아니고 그냥 나이가 많으셔서 아픈 거라고 들었다. 젊은 사람도 앉아서 13시간 가기 힘든데 할머니 연세에는 더 힘드셨으리라.

상태 좀 나아지실 때까지 주방에 있는 점씻에 앉혀드리고 선배님이랑 같이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58년 전에 간호사로 독일에 오셨단다. 그때는 한국이 참 가난했는데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한국 갈 때마다 기분 좋고 깜짝 놀라요 하고 조곤 조곤 말씀하시는 할머니. 독일인 만나 결혼해서 잘 사시다가, 남편분은 먼저 세상을 뜨시고 그 후 혼자 한국이랑 독일 왔다 갔다 하신단다. “58년 동안 외국 사니까 어디가 내 나라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씀에 갑자기 눈물 핑 ㅠ


할머니 건강하세요!



휠체어 손님은 맨 마지막에 내리기 때문에 다른 승객들 하기하는 동안 할머니 손 한번 잡으면서 “할머니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다음번에 한국 가실 때 또 제 비행기 타주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다.

“저는 한국 갈 때 항상 이 비행기만 타요. 한국인 승무원 아가씨들 얼마나 예쁘고 친절한지 너무 고마워요 힘들 텐데 나를 잘 챙겨줘서...” 하시는데 또 왜 눈물 주룩 나는 거죠ㅠ 직원이 끄는 휠체어 타고 나가시는 뒷모습 바라보는데 나도 선배님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안 그래도 점점 내 가족 내 나라 떠나 외국에 나와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데 할머니 말씀에 감정 이입이 많이 된 것 같다.

나는 미국 일 년 반, 독일 9년 살았는데 그 쪼끄만 몸으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보내신 58년 세월 어땠을지 감히 상상도 안된다. 인터넷도 전화도 없고 외국인들이 한국이 뭔지도 몰랐을 시절..

한국 발전해서 너무 좋다는 거며 한국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눈에 밟히는 게 참 많다고 하시는 모습이 역시 5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셔서 사시는 우리 친척 할아버지랑 겹쳐 보이는 게 이민 1세대들은 어디서든지 고생 많이 하셨구나 싶고..



참 고우셨던 우리 할머니 손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참고로 처음 눈물 흘린 비행은 진상 승객 때문에 분해서 사무장 붙잡고 부들부들 울었던 거였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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