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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헤엄치는 길, 아무도 모릅니다.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by 사색가 연두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철부지였다. 그런 녀석이 어쩌다가 가난한 인문학도를 걷게 됐다. 어떤 거창한 동기나 의도가 있어서 이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런 뜻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오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들로부터 이뤄진다는 걸.


학창 시절 때의 나는 꿈과 목표는커녕, 대충 생각 없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입학했다. 나의 전공 학과를 들을 때면 가끔 누군가는 이렇게 묻곤 한다. "혹시 집 안에 돈이 많니?"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집에서 등록금을 대줄 돈이 없어 장학금으로 운 좋게 겨우 겨우 때우고 있고, 생활비는 학기 도중 알바를 병행하며 고달픈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쪽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딱 그뿐이다. 문학? 철학? 글쎄다.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이란 과목을 배우며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긴 적은 있다. 그렇게 호기롭던 한 소년은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구매했고, 그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교양 있는 철학소년 흉내를 내었더랬다. 하지만 살면서 그렇게 끔찍한 문자 덩어리를 처음 본 소년은 금방 풀이 죽어 단 5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고, 결국 책을 덮고서 라면 받침대로 실존을 바꿔버린 실화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인문학과 철학에 매료되어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되었을까? 이 또한 되게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군대에 있었던 나는 입대한 뒤로부터 책을 읽지 못한 지 꽤 긴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그러다가 언제 한 번 선임이 내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책을 읽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곤 선임이 내게 읽어 보라며 책 한 권을 던져주었다. 그 책은 다름 아닌 <위대한 게츠비>였다. 당시에 워낙 오랜만에 책을 읽었어서 그랬는진 모르겠으나, 고전 소설이 이렇게나 재밌는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로 나는 고전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고, 어느새 문학과 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버려 자연스레 글을 쓰고 싶다는 동기까지 생겼다. 그렇게 사회로 나온 뒤, 마음처럼 되지 않아 허우적거리기만 하던 내게 우연히 다가온 공간이 브런치였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곳은 내겐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진지하고 유쾌하게 자기 일상을 글로 녹여낼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의 전공 분야나 지식, 그리고 직접 그 직종에 몸을 담아가야만 얻을 수 있는 전문가들의 글 또한 많았다.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의 글들을 보며 나는 욕심이 생겼고,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인문학은 가난하다. 인문학을 전공해서 먹고살 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현재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 말이다. 이것은 방황하기만 하던 한 바보의 아주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러니 꿈이라는 게, 꼭 그렇게 구체적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세상은 드넓은 망망대해에 우릴 툭 던져놓고선 어디 한번 헤엄쳐 보라며 비웃는다.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 마음껏 비웃어봐. 나는 계속 헤엄칠 테니.'라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며 무언가를 바라기보단, 그저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리고 있음에 의의를 둔다. 우리가 헤엄치는 길 그 끝엔 죽음뿐이겠지만,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난 거 그래도 죽을 때까지 헤엄쳐 봐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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