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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올 이상은 Nov 18. 2023

인문학을 하는 이유

 "자유와 사랑에 대한 찬가와 투쟁이 아니면 인문학에 대한 의미가 없다. 사랑의 위대함이 자유를 가르쳐준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의 말을 들어서도 안된다. 사랑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의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 x x 수업>을 쓴 작가의 강연에 나오는 말이다. 또 작가는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이나 자기표현을 못하는 사람은 권위주의 사회에 속해 있는 것이고,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감정은 억압된다. 감정을 키워나가면 권위주의와 부딪치고, 좋은 사회는 감정이 자유롭게 분출되는 곳이다. 김일성 만세! 를 인정해야 민주주의 사회인 것이다."라고 강변한다.


  강연은 사랑과 자유, 권위주의와 억압된 감정을 언급하면서 민주주의를 말한다. 기가 막힌 전개다. 짝을 얻기 위해 사랑을 하면 부모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곤 하지만 사랑하고 결혼한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던가? 또 우리 사회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곳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의 논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작가의 말대로 감정을 키워 작가에게 저항하자면 작가의 강연은 불쾌감 자체이다.


  < x x 수업>이란 책을 집어 든 것은 제목도 흥미로웠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단원을 읽었을 뿐인데 < x x 수업>을 쓴 작가에게 관심이 갔고 궁금해져서 관련 강연회 동영상을 찾게 되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신념처럼 괴변을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신기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인문학을 한 사람들과 현실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다. 한쪽 면을 보면 인문학과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이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희로애락을 수백 페이지에 걸쳐 가슴을 울리는 문장으로 표현해 내는 능력의 소유자들이지만, 다른 쪽 면을 보면 그 문장이 아름답고, 희망적이라기 보다 인생과 자아에 과몰입되어 섬세하고, 슬프고, 염세적이고, 비판적이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미래의 성취와 희망에 공감하기보다 과거의 슬픔과 아픔을 소환해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훨씬 수월해서인 모양이다.


  인문학을 하게되면 대부분 부정적 환경에 놓여 괴롭힘과 시달림을 당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사회를 고발하고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를 하게 된다.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문화와 인간의 가치,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학문(위키피디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쁨, 행복, 즐거움, 환희보다 불행, 슬픔, 분노, 부정 등의 감정에 호소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나 보다. 그리고 그 슬픔의 이유를 자기 성찰에서 찾기보다 타인과 환경의 잘못에서 찾아들어가나 보다.


  정말 중요한 특색을 찾자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인문을 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슬픔과 불행의 시발점을 일제로부터 시작한 지난 100년을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말도 강연에 나오는 말이다. 평화로이 살고 있는 조선을 힘센 제국주의 일본이 점령하고, 미국과 이승만이 민족을 분단시키고, 군부 독재자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뭉개고, 자유와 민족의 사랑을 외치는 혁명가들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시대였노라고.


  그러나 나는 이들과 생각이 다르다.

역사를 더 앞뒤로 늘려보면 국가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와 아픔을 남긴 사건은 여러 번 있어왔다. 이들 사건은 민생과 사회적 문제는 물론 문화와 정신적 가치의 혼란을 가져왔고 해결하지 않고서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없었던 사건들이었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이 그랬고, 병인양효(1966), 신미양효(1971), 운요호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이 그랬으며, 을사늑약(1905)에 이은 한일합방(1910)이 그랬을 것이고, 6.25 사변(1950)이 그랬을 것이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이 나라 백성들은 국가라는 믿음에 대혼란을 가져왔을 것이고 민초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절박한 민생문제가 남아있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누구는 자신의 힘없음을 거울삼아 자기 성찰과 경세제민으로 누구는 타인의 원망과 관념적 국가관의 확립으로.


  1700년대 한국 실학의 탄생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서구 과학과 청의 농법·농제를 토대로 하는 경세의 학문인 실학은 종래의 공리공담이 주로 된 도학과 주자학의 관념적 세계에서 벗어나 실제의 세계에서 온갖 민생문제와 사회문제, 국가재건을 참다운 이상과 방법으로서 해결하여 다 같이 행복한 생활을 하자는 뜻으로 시작된 학문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또 갑신정변과 대한제국 선언 등 실패한 시도들은 병인양효와 신미양효, 운요호사건과 강화도조약 같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가 재건을 위한 해결책이었을 것이고, 의열투쟁 민족주의, 공산주의, 친미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시도들은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 건설을 기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며,  경제 중심의 반공 군사정권은 6.25 남침과 혼란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이중적이다. 개인과 국가가 잘되고, 사회의 구성원이 골고루 살아가기 위한 담론으로 지나친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  아니 그 이상향을 이용하는 위정자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개인, 가족, 그들이 속한 조직, 국가 안에서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을 경험해 보면 무엇이 현실적이고 무엇이 비현실적인 지를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속과 겉이 다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인문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이 타인과 동행하기 위해 어떤 행동양식을 지녀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방향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향타가 없어지면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규범과 윤리 없이 약육강식의 사회로 빠져 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능과 본질을 속이는 이중성이나 알량한 지식과 감정으로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얄팍한 수작은 단연코 거부하고자 한다.


  역사를 뒤돌아 당나라를 등에 업고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240년을 견디다 935년 고려에 흡수되었지만 실제로는 676년 통일 이후 100년도 안된 혜공왕 767년부터 혼란이 계속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를 아울러 국가를 운영하는 방향타를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려는 불교의 통일(교관겸수, 정혜쌍수)로  국가통화(國家統和)의 민족적 이념에 합치시켜 오백 년을 이어갔고, 조선은 고려 패망의 원인을 송나라로부터 차용한 성리학을 기본으로 개혁하고 인심을 일신함으로써 신왕조의 지도이념을 확립해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인문이 국가와 사회를 경영하는 근본이라고 믿는 이들은 적어도 고려나 조선의 국가 건설 초기와 같은 진실된 담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금의 세태를 보면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독립과 남의 도움으로 유지하고 있는 국가경영이 복에 겨워 100년 전 의열투쟁 민족주의, 공산주의, 친미 자유민주주의의 싸움을 소환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물고 뜯는다. 국가적으로든 민족적으로든 지독하고 지겨운 속앓이다. 이젠 좀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타나 우리의 살 길을 한 곳으로 수렴해 갔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명운도 개인의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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