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곽용수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겼어요. 말하자면 벼락부자가 된 것이지요. 그는 좋아 어쩔 줄 몰랐어요. 그도 그럴 것이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늘 가난하게 살았거든요. 그의 직업은 운전기사인데 지난달부터는 어떤 사업가의 승용차를 운전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로는 먹고살기도 빠듯했어요.
마흔 살이 되도록 근근이 살아온 그에게 드디어 돈벼락이 떨어졌지 뭐예요. 정말 엄청난 돈이 생겼어요. 아마 평생 벌어도 못 만질 거액일 걸요. 곽용수는 아내와 딸에게 돈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요. 절대로 비밀을 지켜야 하거든요.
일단 그는 돈 가방을 숨기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뒷마당에 땅을 파고 숨겼지요. 하지만 돈을 꺼낼 때마다 삽질을 해야 하니까 귀찮았어요. 또 비가 오면 젖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어요.
그래서 집 안에 있는 다락으로 돈 가방을 옮겼지요. 그런데 돈을 꺼낼 때마다 사다리로 오르내려야 하는데 혹시 딸이 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어요.
이번엔 혼자만 다니는 지하 창고에 넣었지만 그것도 불안했어요. 장마철에 곰팡이가 생기거나 쥐가 갉아먹을지도 모르잖아요.
골똘히 생각하던 곽용수가 무릎을 탁 쳤어요.
“아, 맞아!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그는 안방 옆의 서재에 들어갔어요. 그 방은 거의 안 쓰지만 책상 밑에 돈 가방이 들어갈 공간은 충분했어요. 그는 식구들 모르게 돈 가방을 서재에 옮겼어요.
그런데 또 걱정이 생기네요. 혹시 아내가 들어오면 들킬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그는 아내에게 말했어요.
“여보, 오늘부터 서재에는 들어오지 말아요.”
“왜요?”
“아니, 내가 뭐 좀 할 일이 있거든요.”
“무슨 일인데요?”
아내가 자꾸 물었어요.
“나도 책 좀 읽고 생각할 것도 많으니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알았어요. 그런데 방청소는 어떡해요?”
아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또 물었어요.
“이 방은 내가 청소할 거니까 그냥 둬요.”
아내는 아무 의심도 안 했어요. 오히려 남편이 청소를 도와준다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곽용수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서제에만 콕 박혀 있었어요. 서곡이라고 아시죠? 네, 맞아요. 집콕, 방콕 그런 거랑 비슷해요. 그런데 어쩌다 외출할 때는 방문을 잠그고 나갔어요. 열쇠를 깊이 감추지만 그래도 서재가 불안해서 일찍 돌아와서 서콕해요.
아하, 이런! 곽용수는 갑자기 돈을 쓰고 싶어 근질근질하네요. 졸지에 큰돈이 생긴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요. 그것도 고생하지 않고 얻은 돈일수록 더 그래요.
곽용수는 먼저 큰 백화점에 가서 아주 비싼 양복과 구두를 샀어요. 아내에게는 생활비와 화장품 값을 넉넉하게 주었어요. 아홉 살짜리 예희에게도 용돈을 많이 주었어요. 예희는 용돈을 받으면 아빠에게 안마를 해주어요. 뽀뽀까지 해주며 온갖 아양을 다 떨지요. 세 식구가 고급 호텔에 가서 비싼 요리도 먹었어요.
“여보, 당신 갑자기 돈이 많아졌네요.”
“아, 그거요? 내가 일 잘한다고 우리 회장님이 특별 수고비를 엄청 주더라고요. 이제 우리도 부자가 되었어요.”
곽용수는 넉살 좋게 거짓말을 했어요.
며칠 동안 돈 가방을 쓰다듬기만 하던 그는 생전 처음으로 최고의 행복을 느꼈어요. 서재 걱정만 빼면 꿈처럼 달콤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지요. 정말 짜릿한 기쁨이었지요.
<2>
사실 곽용수에게 생긴 엄청난 돈은 남의 것이에요. 바로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조규만 회장 돈인데 곽용수가 훔쳤어요. 참, ‘조규만’ 회장은 ‘조그만’ 회장이라는 별명이 있대요. 체격이 작은 그에게 친구들이 옛날부터 부르던 별명인데 본인도 싫어하지 않는대요. 어쨌든 조그만, 아니 조규만 회장이 유명한 정치인에게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데, 그 심부름을 곽용수에게 시켰지요.
조규만 회장은 아무도 모르게 전달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줬어요. 하도 여러 번 강조하니까 곽용수는 슬슬 호기심이 생겼어요. 뭐가 들었는지 가방 두 개가 묵직했어요.
곽용수는 그 가방을 차에 싣고 가면서 생각했어요.
“이 가방에 뭐가 들었을까? 정말 궁금해서 미치겠군.”
곽용수는 궁금증을 도저히 참기 어려웠어요. 그는 으슥한 곳에서 망치와 펜치 등의 공구를 들고 가방 하나를 억지로 열었어요. 그런데 열고 보니 돈이었어요. 정말 엄청난 돈이 들어있었어요. 곽용수의 가슴은 북소리가 들릴 정도로 뛰었어요.
‘아, 이 돈이면 내가 평생 일하지 않아도 살겠는데……. 어쩌지?’
조금 망설이던 곽용수는 마침내 그 가방을 훔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정치인에게는 가방 한 개만 전해주었어요. 그런데도 그 정치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어요. 본래 가방이 몇 개였는지는 몰랐나 봐요.
심부름을 마친 곽용수는 불안했어요. 불안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밥맛도 없을 정도였어요. 뿐만 아니라 조규만 회장이 찾을 때는 가슴도 마구 뛰었어요. 어쩌다가 다른 직원이 불러도 깜짝깜짝 놀랐어요. 가끔 길에서 경찰이라도 만나면 등에 땀이 흐를 지경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통 크게 생각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래. 나는 훔친 게 아니고 나누어 쓰는 거야. 비록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떤 배짱이 생기는 것 같고 불안감도 약간 줄어들었어요.
‘또 그 정치인은 가방 한 개가 없어진 걸 모를 거야. 그러니까 고맙다는 인사도 몇 번이나 했잖아.’
곽용수는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어요.
‘조 회장은 혹시 알아차려도 경찰에 신고 못 할 거야. 아무도 모르게 전하라는 돈이면 분명히 정직한 돈이 아닐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곽용수는 오히려 당당해졌어요.
그는 매일 조규만 회장을 태우고 다니면서도 태연하게 행동했어요.
그리고 무슨 주문이라도 걸듯이 속으로 말했어요.
‘괜찮아. 세상에는 나보다 나쁜 사람들도 많아. 우리 회장은 큰 도둑이고 나는 작은 도둑이야. 본래 비밀스러운 심부름은 수고비를 좀 많이 받지. 기죽을 필요 없어.’
자신감이 생긴 곽용수는 결혼 10주년이라고 아내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물했어요. 뿐만 아니라 예희에게 새 피아노도 사줬어요.
월요일 아침에는 최고급 양복을 입고 출근했어요.
"여보게, 곽 기사. 자네 그 양복 아주 좋아 보이네. 비싼 옷이지?”
“아, 네. 좀…… 비싼… 이태리 패션입니다.”
그 말에 조규만 회장은 약간 못마땅한 눈으로 곽용수를 쳐다보았어요.
<3>
이튿날 곽용수는 그제 입었던 헌 옷을 입고 출근했어요.
“에이, 옷도 마음대로 못 입겠네. 회사에서는 평상복을 입어야겠어.”
곽용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조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규만 회장은 손님과 저녁 식사를 했어요. 아주 비싸기로 소문난 일식당에서요.
그런데 식사 중에 우연히 건너편 자리에 눈길이 멈췄어요. 거기에는 바로 곽용수가 있었고, 그의 아내와 딸로 보이는 소녀까지 식사를 하고 있었거든요. 조규만 회장은 가만히 생각했어요.
"여기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닌데……. 가만있자. 지금 입고 있는 양복도 그렇고 가족들의 옷도 모두 비싸게 보이네. 저 사람 본래 부자였던가?’
조규만 회장은 궁금했지만 일단은 모른 척했어요.
다음날, 조규만 회장은 비서실 직원에게 곽용수를 몰래 조사해 보라고 일렀어요.
며칠 후에 조규만 회장은 조사 결과를 보고 받았지만 시원찮았어요. 그래 직접 물어보기로 작정하고 곽용수를 불렀어요.
“곽 기사, 자네 며칠 전에 L호텔 일식당에서 식사했지? 가족들이랑.”
“네? 아, 네. 아내 생일이라고…….”
곽용수는 간이 철렁했지만 태연한 척 노력했어요.
“요즘 자네 비싼 외식도 즐기니 형편이 좋은 모양일세. 게다가 가족들 모두 비싼 옷까지 입고 말이야.”
“네. 얼마 전에 복권이 당첨되어서 돈이 좀 생겼습니다. 하하하,”
곽용수는 미리 준비한 거짓말로 쉽게 둘러댔어요.
“아이구, 그런가? 허허허,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곽용수는 거짓말이 먹혀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