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머 콩트 (5) 총무 전성시대

by 구민성

총무 전성시대

여주인과 손님...!!










백 여사가 운영하는 식당도 처음 서너 달 동안은 소위 개업빨을 받았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달고 미원을 많이 쓴다는 소문이 나더니 서서히 내리막길을 탔다. 요즘 손님들은 현명하거나 까탈스럽다. 혹은 두 가지 특징을 다 가지고 갑질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손님을 욕할 수도 없는 백 여사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작년에 정년퇴임한 남편에게 우겨서 노후 대책으로 시작한 식당이다. 퇴임 이후에 봉사단체 회장을 맡아서 점잖게 활동 잘하던 최 회장이었다. 그런데 백발이 성성한 양반이 팔자에도 없는 서빙을 하느라고 모양이 말이 아니다. 열세 살이나 어린 마누라 말 듣고 정말 폼 다 구겨졌다.


최 회장은 늘 ‘우리 마누라, 우리 마누라’를 칭송했지만 지금은 ‘원수 마누라’다. 백 여사는 남편에게 입도 뻥긋 못하고 죄인처럼 엎드려 지낸다. 그렇다고 폐업하기도 곤란하다.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품 시설비, 대형 간판과 광고비 등등 투자액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영양학 전공이라며 큰소리까지 땅땅 쳤으니 오죽할까.


그런데 어느 날, 근처 초등학교 어머니회에서 단체로 왔다. 단체 손님은 매출의 뭉텅이도 크고 같은 음식을 주문하니 일도 수월했다. 단체는 머릿수보다 예약을 넉넉하게 하고 술이나 안주도 버리는 게 더 많다. 백 여사가 가만 보니 총무의 권한이 대단해 보였다. 식당과 메뉴 결정, 대금 결제까지 모든 게 총무 선에서 이루어졌다.


아, 그렇구나! 백 여사는 머리를 굴렸다. 후배에게 부탁해서 각종 단체의 현황을 파악했다. 특히 총무들의 연락처를 따로 챙겼다. 지방 소도시라고는 해도 단체들이 엄청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회장, 총무, 감사를 뽑고 단체를 만들어버린다. 연대의식이 강한 민족이라 그렇단다.


며칠 후부터 식당에 단체 손님이 몰렸다. 백 여사는 주방장을 채용하여 조리를 맡겼다. 그리고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키고 자신은 손님 테이블을 누비며 서빙을 했다. 특히 총무에게는 다정하게 웃으며 극진하게 모셨다. 어떤 날은 고객 관리한다며 밖에 나갔다. 남의 가게에서 비싼 술도 마시고 밤늦게 오거나 새벽에 오기도 했다.


좁은 지역이라서 소문은 금방 퍼졌다. 백 여사가 어떤 단체의 총무를 만나고 나면 며칠 내로 그 단체의 월례회를 이 식당에서 한다는 것이다. 매상이 많이 오르거나 현금을 주는 단체는 백 여사가 두 번 만나준다는 말도 떠돌았다.


계산대 앞에서는 정우회 김 총무가 현금으로 결제하는 중이었다. 이쑤시개를 삐딱하게 물고 백 여사에게 농담하는 김 총무를 보면서 최 회장이 중얼거렸다.

“연말에 회장 임기 마치면 총무에 출마해야지, 꼭.”

오늘 최 회장의 설거지는 다른 날보다 소리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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