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또 한 번의 위기
LA 공항에서 효지 일행은 출국 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나타샤와 오빠가 공항 직원과 이야기하는 중에 효지는 잠깐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때 선글라스를 낀 금발 여인이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여인은 가방을 밀고 나왔습니다.
불과 3분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오빠는 효지가 안 보여서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나타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자용 화장실에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효지는 보이지 않고 효지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분홍색 머리띠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타샤는 얼굴이 하얘지도록 놀랐습니다.
얼른 머리띠를 주워 들고 오빠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정규 씨, 이것 봐요. 이거 효지 머리띠 맞죠?”
“아니, 이건! 우리 효지 머리띠가 분명한데… 어디서……?”
“효지가 없어졌어요. 얼른 경찰에 알려야 해요.”
그때 마침 공항 경찰 두 명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나타샤는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경찰들은 무전기로 상황실에 급하게 보고를 했습니다.
공항 상황실은 ‘한국 어린이 납치사건’으로 판단하고 모든 출입문을 신속하게 차단했습니다.
숨이 막히도록 긴박한 상황입니다.
한쪽 구석에서 금발 여인은 큰 가방을 붙잡은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공범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잠시 후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나타나서 큰 가방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출입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벌써 모든 출입문이 닫힌 후였습니다.
문마다 경찰들이 총을 들고 지켰으며 일부 경찰들은 여행객들을 검문하고 있었습니다.
“탕! 탕!”
콧수염 남자는 자신을 검문하려던 경찰 두 명을 쏘았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스타킹을 뒤집어쓴 공범은 천장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콧수염 남자는 서툰 영어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우리는 지금 효지를 데리고 있다.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 아이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경찰 책임자 한 사람만 우리 앞으로 나와라.”
잠시 후 상황실의 지시를 받은 경찰 간부 한 사람이 범인들의 앞으로 나왔습니다.
콧수염은 경찰 간부에게 자신의 15m 앞까지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거기에서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앞으로 5m 더 오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스타킹 공범이 그 권총을 집어 왔을 때, 콧수염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크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1시간 이내에 현금 1억 불을 가지고 오라. 그리고 헬기 한 대를 대기시켜라. 물론 기름도 가득 채워라. 우리가 헬기를 타고 국경을 벗어나면 이 아이를 풀어주겠다.”
경찰 간부가 상황실에 전화해서 범인의 요구 사항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에게 물었습니다.
“한국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건 말할 수 없다.”
바로 그때 공범이 갖고 있던 큰 가방이 약간 흔들렸습니다.
납치되는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던 효지가 깨어난 것입니다.
효지는 가방 속이 무척 답답했습니다.
손발이 묶여있고 입에도 수건으로 묶여있었습니다.
가방 안에서 몸을 자꾸 움찔하니까 콧수염이 지퍼를 약간 열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효지는 상황을 짐작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어떤 나쁜 사람에게 잡혀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효지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눈물이 자꾸 흘렀습니다.
오빠와 나타샤는 효지가 어디 있는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범인과 경찰 간부의 대화에만 집중했습니다.
잘내미는 오빠와 함께 있지만, 효지의 부탁이 없으니까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효지는 가방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짧은 순간에 텔레파시 부탁법을 생각했습니다.
효지는 정신을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텔레파시를 보냈습니다.
‘잘내미야. 누나는 지금 나쁜 사람들의 가방에 갇혀 있어. 네가 좀 구해줘. 부탁해.’
효지는 귓속말과 이마뽀뽀도 마음으로만 했습니다.
잘내미가 싸악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범인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범인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거기 서! 야, 나무토막! 움직이지 마!”
그러나 영어로 말했으니까 잘내미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알아들었다고 해도 효지의 말이 아니라서 먹혀들지 않습니다.
“꼼짝 마! 거기 서!”
아무리 외쳐도 잘내미는 범인들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탕! 탕!”
공범이 잘내미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습니다.
잘내미에게 쏜 총알은 반사되어 공범 자신에게 맞았습니다.
총알을 되돌려버리는 마법을 그 공범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콧수염은 공범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잘내미에게 총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잘내미에게 그 자리에 서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잘내미는 효지의 말이 아니면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이제 잘내미는 콧수염의 4m 앞에까지 접근했습니다.
콧수염은 효지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침을 튀기면서 소리쳤습니다.
효지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눈을 크게 뜨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콧수염은 잘내미를 가리키면서
“stop! stop!"
이라고 계속 외쳤습니다.
효지는 겨우 알아듣기는 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끌었습니다.
잘내미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기침을 하는 척하며 최대한 꾸물거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밖에는 헬리콥터 한 대가 착륙하려고 했습니다.
금발 여자가 콧수염에게 재빨리 말했습니다.
“저길 봐! 헬리콥터가 도착했어.”
“어디?”
콧수염이 헬리콥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뻑!’ 하는 파열음과 ‘억!’하는 비명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콧수염은 한쪽 무릎을 잡고 깨금발로 풀쩍풀쩍 뛰었습니다.
잘내미가 콧수염의 무릎에 전광석화처럼 박치기했던 것입니다.
콧수염은 뼈가 부러져서 다리를 너덜거리며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금발 여인은 입만 쩍 벌리고 꼼짝을 못 했습니다.
곧 이어서 ‘퍽!’ 소리와 함께 배를 움켜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잘내미가 그녀의 배에 박치기를 힘껏 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세 명의 범인을 모두 잡았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로 공항 청사는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효지와 잘내미와 범인들을 촬영하기에 바빴습니다.
오빠가 얼른 달려가 효지를 가방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효지는 나오자마자 잘내미에게 이마뽀뽀를 하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 경찰 책임자가 효지 일행을 공항 상황실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의 대형 화면에는 이미 제임스 대통령이 나와 있었습니다.
효지와 대통령은 나타샤의 통역으로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효지 양,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네. 괜찮아요. 대통령 할아버지.”
“방금 보고를 받았는데, 우리 미국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미안해요.”
“이젠 괜찮아요. 다 해결이 되었으니까요.”
“부디 조심해서 귀국해요. 그리고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어요.”
“네. 대통령 할아버지도 건강하세요.”
효지는 제임스 대통령과 인사를 하고, 나타샤 언니와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두 달 동안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헤어지기가 무척 섭섭했습니다.
“언니도 한국에 함께 가면 안 돼?”
효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습니다.
나타샤는 무릎을 구부리고 효지를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울지 마, 효지야. 언니도 한국에 가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야.”
“치! 지금은 왜 안 돼?”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야. 보고 싶으면 인터넷으로 전화하면 되겠지?”
“응, 언니. 그동안 고마웠어. 언니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효지는 잘내미에게 텔레파시로 부탁했습니다.
‘잘내미야. 언니를 안아 줘. 부탁해, 뽀!’
잘내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나타샤에게 다가왔습니다.
나타샤는 잘내미의 느닷없는 포옹에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그리고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나타샤는 탑승구로 나가는 효지와 오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