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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

인생은 타이밍(?)

by JJ

제목이 좀 그런가?


살아갈수록 인생은 운칠기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듯싶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고비고비마다 노력과 실력 외에도 운이 작용하여 결과가 좌우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학창 생활과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요소들이 겹쳐야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역시 운이 약 70%는 작용했었던 것 같다.


2000년 대 초반, 내가 프로축구단 사무국에서 프런트로 근무할 시절이었다. 당시 축구단 단장님은 축구에 대해 잘 아시는 전문가라기보다는 그 당시엔 대부분 그랬듯이 본사에서 파견되어 온 50대 초반의 직장인이셨다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당시 단장님의 업무 지시에 대해 뭔가 불합리하다던지 아니면 본사의 지시에 그냥 따르기만 하는 경우에 좋게 말해서 직언,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 없이 대드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같으면 돌려서 말한다던가, 그 자리에서가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과 분위기에 다시 말씀을 드린다던가 하는 방식을 취했겠지만 그때는 강공 혹은 직구 일변도였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이어서 그랬나 보다~^^)


그 결과 나는 단장님께 찍혔다. 내 윗분을 불러 '뭐 저런 x 이 있냐', '제대로 가르쳐라' 등등 말씀을 하셨고 그 이후로도 한번 찍힌 낙인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았다.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구단 성적도 나름 잘 났고 맡은 업무에 대해서도 타 구단에 비해 뒤질 것 없었지만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인사고과에서 거의 최하 등급을 받아 진급은 언감생심이었다. 지금도 별반 차이 없지만, 그 당시엔 진급을 위해선 개인의 해당 연도 업적도 중요하지만 결국 윗분들의 의중에 따라 최종 결정 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해외 출장을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것도 축구단 대표이사님과 함께! 당시 대리 신분으로 사장급 대표이사님과의 출장이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ㅠㅠ


해외로 이적시킨 선수 격려 차 유럽 출장 및 겸사겸사 시간을 내어 프리미어 리그 경기 관람까지 포함된, 일정만 따지면 환상적이긴 하나 동행하는 분이 대표이사님이라 부담 백배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정을 준비했고 출국날이 다가왔다. 대표이사님보다 먼저 인천 공항에 잘 도착해서 수속을 준비하단 중, 뭔가 허전했다. 왠지 중요한 무엇을 빠트리고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바로 여권을 집에 놓고 왔다... (참고로 서울이 아닌 지방 구단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4시간 정도 남아 있었고 죽었다 깨어나도 지방까지 다시 가서 여권을 가지고 인천 공항까지 다시 오기는 불가능했다. 안 그래도 단장님께 찍혀서 진급도 불가능했는데 이젠 진급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다. ㅠㅠ(직장인은 다들 알겠지만 대표이사를 모시고 가는 출장에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아 대표이사님만 출장을 가시게 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짱구를 풀로 돌리기 시작했다. 일단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마침 어머니도 그 지방에서 또 다른 지방으로 운전해서 이동 중이셨다. 어머닌 자초지종을 듣고 일단 차를 돌려 160킬로 속도로 집으로 가시기로 했다. 또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 중이었던 베프에게 부탁해 베프의 제자를 통해 여권을 전해 받는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 당시 내가 체류 중이었던 지방에서 인천공항까지의 항공편이 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우여곡절 끝에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정상적이었다면 항공기 출발 시간 30분 전에야 여권 수령이 가능했지만 마침 1시간 30분 정도 출발이 연기되었고 대표이사님도 이에 따라 예정 시간보다 인천 공항에 늦게 도착하셨으며 베프의 제자는 고맙게도 대표이사님 도착 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여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는데 운이 좋았는지 대표이사님 도착 전에 여권을 받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표이사님께 함께 유럽 출장을 갈 수 있었다. 워낙 힘든 과정을 거쳐 출발해서 그런지 오히려 그 이후의 업무들은 아주 부드럽게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흡족하신 당시 대표이사님은 나를 업무 능력이 뛰어난 직원으로 평가하시기에 이르렀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3일 오후 05_56_08.png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시점이 인사평가가 최종 결정되는 시점이었는데 단장님께서 망쳐 놓은 내 인사평가는 대표이사님에 의해 극적으로 뒤집혔고 난 당당히(?) 과장 진급에 성공했다.


'인생은 타이밍', '운칠기삼' 맞지 않나?


인생을 살아보니 최선은 기본이다. 다만 최선을 다한 다음에 운이 따라야 된다. 내가 아무리 실력이 있고 업무 실적이 뛰어나더라도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점이 오히려 나를 겸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진부한 얘기 같지만 '진인사대천명' 혹은 아랍어로 '인샬라'가 내 인생의 주요한 좌우명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계기다.


이 이후로도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계속 속으로 외치고 있다.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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