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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미 May 03. 2024

스포츠 속에 숨겨진 전체주의 씨앗

프로야구경기에 국민의례가?



“루킹 삼진! 방망이 한 번 휘두를 틈 없이 타자에게 KKK를 먹이는 ㅇㅇㅇ 투수!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라 불릴 만합니다!” 프로 야구경기는 언제나 팬들의 응원으로 뜨겁다.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가득한 야구 경기 중, 단 한 순간 모두가 조용해지는 때가 있다. 바로 국민의례 시간이다. 남자친구를 따라 처음 야구장을 간 날 중학생 이후 처음 들어보는 익숙한 선율에 반응해버린 내 손은 자연스레 가슴 왼편에 얹혔다. 물론 그 다음부터는 맹목적인 애국심에 대한 괜한 반발심 탓에 다시는 손을 얹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말이다.


국가 대항전도 아닌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실시한다는 건 한번쯤 의문을 가져볼 만한 문제다. 미국의 대다수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는 국가를 제창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배경에 근거를 둔다. 1800년대부터 끊이지 않았던 내전 탓에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묶기 위해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 제창 의식이 시도된 것이 시초다. 1982년 프로 야구 창단 이후 특별한 국가 분열이 없었던 한국에서무작정 미국을 따라 국기를 향해 손을 얹는 행위는 한국에 충성을 다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진다. 마치 스포츠 경기 중에도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개개인은 수많은 역할을 지니고 그 역할에 따른 의무를 갖는다. 학교의 학생으로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효도해야 하고, 국가의 국민으로서 각종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가에 속한 국민으로서의 역할, 바로 그것이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로 요구됐다. 전쟁이 휩쓸고 간 땅 위에는 황량함과 가난만이 남아있었다. 그 가운데 독재 정권이들어섰고, 아버지 역할을 자처했던 그 독재자는 나라가 강해야 국민이 잘 산다는 명목 하에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독일로 나섰던 청년들은 그곳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배변을 처리해야 했고, 1000m가 넘는 땅을 파고 들어가 까만 돌을 캐야 했다. 한국의 국민으로서 머나먼 타지로 떠났지만 그곳에 도착한 뒤 그들은 더 이상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었다. 개인은 국가를 위해 당연히 희생될 수 없다는 논리는 오히려 개인을 국가 밖으로 내쫓았다.


이제 국민이라는 역할은 개인에게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국가를 위해 온 몸을 바쳤다가 피해만 봤던 수많은 선례들 탓인지 요즘 젊은이들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기에 그친다. 이제는 주변을 둘러봐도 ‘국민’인 사람들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내가 먹고 있는 딸기는 ‘비’한국 국민 노동자가 농사 지은 것이고, 내 옆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는 ‘비’한국 국민 유학생일 테다. 스포츠가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유적 존재(類的存在)의 공통된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같은 스포츠 팬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경기를 관람할 때 스포츠가 가진 ‘통합’의 의미는 더욱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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