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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미 May 01. 2024

환승연애, 그 너머

중세의 사랑과 근대의 사랑


희정이는 젊은 층의 낮은 이성 교제율에 한몫하는 친구다.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본인의 삶을 독자적으로 개척하겠다는 페미니스트도, 애인이 한 번도 없었던 모태솔로도 아니다. ‘현생’에 치여 바쁘게 살다보니 최근 남자친구를 만들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이런 저런 기회는 많았지만 연애를 이어 나가는 과정을 겪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시작할 때는 매사가 다 설레고 너무 사랑스럽지. 근데 꼭 좋았던 시기는 얼마 안 가고 남는 건 같이 헤쳐 나가야 할 지난한 길뿐이더라? 처음에는 좋아서 넘어갔던 걸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희정이는 <환승연애>를 보면 본인이 다 지친댄다. 왜 저렇게 힘들어하면서 굳이 사귀어야 하냐고. 희정이는 <환승연애> 보기를 그만 뒀다.


시작은 좋지만 유지는 힘들다. 젊은 층의 줄어든 이성 교제뿐만 아니라 점점 높아지는 이혼율과 출생율은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진 사회적 배경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유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 부모님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하는 이유를 따로 찾지 않았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하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지속할 이유를 찾아야지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중세의 사랑과 근대의 사랑은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중세의 사랑은 전통과 관습으로 유지된다. 의무에서 비롯된 배우자와 사적 영역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정부(情婦)가 구분된 이유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중세의 배우자와 정부(情婦)의 역할은 통합됐다. 가족과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한 사회적 기반으로 떠오른 근대에서는 더 이상 의무에서만 비롯되는 관계는 필요 없다. 이렇게 사랑을 기반으로 한 관계만 남겨지며, 의무는 사랑 속에 편입됐다. 


누군가 사랑과 의무는 동반할 수 없는 관계라 했던가. 사랑이라는 감정은 야속하게도 금방 식어버리기에 중세의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교체할 수 있었다. 사랑의 대상이 정부(情婦)에서 의무를 다 해야 하는 배우자로 바뀌어 버린 근대의 사랑은 의무와 사랑의 중간 지점을 명확하게 찾지 못하고 있다. 사랑은 언제라도 차갑게 식기 마련이므로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문화와 감정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의무와 사랑이 한데 섞여버려 관계의 지속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장기 연애가 대단한 이유는 초반의 불타오르는 사랑에서 시작한 감정의 변곡점을 유연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연애 프로그램은 공란으로 남아있는 사랑의 지속을 위한 문화와 규칙을 수립하는 담론의 장이 된다. <환승연애>를 보며 짧게 끝나버린 지난 연애를 되돌아 생각해보고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는다. 연애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오은영 리포트> 또한부부간 갈등 상황과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각자의 상황에 대입해보게 한다. 문화 콘텐츠가 사적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지속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희정이는 <환승연애>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얼마 전 새롭게 사귄 남자친구와 같이 본다. 연인과 함께 <환승연애>를 보며 서로의 의견을 묻고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꽤나 즐겁댄다. 아직도 사랑이 금방 식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움도 있는데 뭐 해볼 만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희정이는 불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날을 향한 기대가 섞인 듯한표정으로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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