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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람 Sep 11. 2023

18살, 첫 공모전을 통해 얻은 것들

나의 첫 드라마 <메모리>

(전편 '공모전은 처음이라'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가지고 프레젠테이션 장소에 도착했다. 열댓 명 정도의 학생들이 발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긴장되고 떨리는 모습으로 보였는데, 그중에 아마 내가 제일이었고 자부한다.


자꾸만 머릿속이 하얘져서 준비한 자료를 읽고 또 읽고 있었는데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심호흡을 하며 안내해 주시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 보니 작은 강의실 같은 곳에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 여자 한 분이 앉아 계셨고, 함께 자료를 볼 수 있는 작은 모니터 화면이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내 ppt를 띄우고, 준비해 온 내용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기획의도, 등장인물, 줄거리에 대해 순서대로 설명을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제대로 설명한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심사를 하시는 남자 분은 '얘가 뭐라고 하는 거야' 싶은 눈빛과 안쓰러움이 공존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데, 그것에 더 기가 죽었다. 중간 즈음부터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스스로도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결과는 당연히 상한 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났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기회를 통해 얻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쓴 이야기는, 기억을 잃어가는 한 젊은 여자와 헌신적인 남자의 사랑 이야기였는데, 아마 내가 기억하기론 그때 당시만 해도 젊은 여자가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는 설정이 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본선 진출이 되었을까를 복기해 봤을 때, 아마 그 지점이 약간의 신선함을 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오, 그래도 소재를 잡을 줄은 아는 것 같아!' 하는 첫 번째 근자감을 얻었더랬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그 해 가을 즈음에 나온 김수현 작가님의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다. 아마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또는 조금 더 많은 분들은 잘 아는 드라마일 것이다. 나는 비록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밖에 쓴 게 없지만, 표면적인 줄거리나 캐릭터 설정이 되게 그 드라마 비슷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이자, 나도 가장 존경하던 김수현 작가님의 드라마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니..?

'오, 나 조금 소질 있나 봐!' 하는 두 번째 근자감을 얻었다.



비록 하나의 완전한 대본을 완성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 시놉시스를 잘 설명한 것도 아니었고, 상을 받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두 가지 근자감이 꽤 오랫동안 날 기쁘게 해 줬으니, 그걸로 충분한 경험이었다.



본가에 갔다가 찾아낸 공모전 준비 자료들. 12년 전 자료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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