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0년만 묵혀두면 대박!

열어보니 마이너스?! -보험편 1-

by 작간

내가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한 사건을 말하고자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난 재테크와 금융에 지식 레벨 0에 해당된다.

주식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주식을 하면 큰일 난다는 이야기를 전래동화처럼 들어왔고,

학창 시절에 배운 미적분 따위 사회 나와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번생은 부자 되긴 글렀고, 욕심부리지 않고 사기나 안 당하며 먹고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26살.

소소한 사기는 사뿐사뿐 걸어와 내 인생에 끼어들었다.


26살의 나는 모 드라마 보조작가를 하며 월 150(세금 3.3프로 떼면 140 언저리) 받고 일할 때였다. 보조작가는 말 그대로 드라마 메인 작가의 보조를 하는 일을 하는데 자료조사를 해주거나, 메인작가가 하찮게 여기는 씬을 대신 써주거나, 메인작가가 귀찮아하는 광고 PPL 조율 및 정리를 하는 잡역일을 한다. 이것도 할 말이 많지만 이 얘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때 엄마의 ‘지인’이 웃으면서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월 얼마 안 되는 돈 괜히 여기저기 쓰지 말고 ‘저축성 보험’을 하면 나중에 몇 배의 이익이 된다고 했다.

이 두 문장만 보고 아마 당했거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하며 탄식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안 당했거나, 당할 예정인 사람들은 여기까지 보고도 뭐가 문제지? 하며 볼 테니 우선 함께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상해, 장해, 손해율, 무배당.... 이런 낯선 단어를 폭격이 내 귀에 퍼부었지만 그냥 밑으로 쏟아지고, 딱 두 개만 믿고 사인했다.

첫째, 엄마가 믿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하나이다.

둘째, 그 지인이 날 위해서 가져온 보험이니 잘 모르고 해도 괜찮을 거다.

30분 정도 설명 듣고 사인한 결과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얼마나 날 괴롭힐 줄 그땐 알지 못했다.

저축성 보험 2개. 한 개는 15만 원, 다른 한 개는 7만 7천 원이 자동이체 되면서 난 월급 140 언저리에서 110만 원 정도로 생활을 해야 했다. 혼자서 110만 원으로 충분히 산다고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이 돈으로 세 식구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비용 35만 원 고정비. 나머지 돈으로 먹고살려고 하는데 정말 줄이고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 절망하지 않았다.

아끼고 열심히 살다 보면 엄마 지인 분 말다 보면 언젠가 보상이 오는 시기가 올 거라고 믿었기에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첫 번째 저축 보험의 만기가 되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몇 배로 불어나있을 내 저축보험을 처음으로 까봤다.

총 납입금 6백 언저리. 현재 수익금 3백 언저리...

정확히 반 토막이다. 무언가 잘못됐겠지...

불안으로 쫄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객센터에 전화해 물어보았다.

그러니 한 말-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래요. 언젠가 경기가 좋아지면 플러스되니까 그때 빼세요.”


그때서야 내가 든 저축성 보험의 실체를 알았다. 변. 액. 유. 니. 버. 셜

변액보험은 보험금과 해지 시 환급금이 변동하는 특성을 가진 보험 상품으로,

보험료의 일부가 특정 펀드에 투자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고 인터넷은 설명한다.

주식은 패가망신이라 세뇌당하며 자란 나의 의지와 다르게 난 자동으로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다.

편드 가입 내역에 보이는 독일, 신흥국 같은 처음 들어보는 투자 내역들.

지난 수익률에서 플러스가 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이너스였다.

더 웃기는 건 이렇게 수익률이 안 좋은데 사업비는 년 5만 원씩 따박따박 때갔다.

내가 태어나서 기억이란 걸 하고 살면서 단 한 번도 경기가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수출 역대 최대라는 뉴스가 나도 그건 뉴스일 뿐, 곰팡이 핀 반지하 500에 45 돈을 내며 세 식구 살아내야 하는 우리 가족에겐 영원히 경기는 최악일 뿐이었다.

고객센터의 말은 내 돈 6백만 원은 영원히 마이너스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로 들렸다.

나는 이때 엄마의 지인에게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객센터 말처럼 언젠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면 플러스되는 때가

있지 않겠냐고 따지지 말라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듯싶었다.

존버하다 보면 존나 버는 그때가 올 거라며 내 감정을 토닥였다.

하지만 두 번째 빡침은 더 큰 분노의 파도를 타고 내 싸대기를 때렸으나 화내지도, 울지도 못했다.

엄마 지인의 친절한 미소를 타고 내게 다가왔기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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