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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11. 2024

만점이 전부는 아니니까

과정의 아름다움

한 단원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미리 세워둔 평가계획에 따라

수행평가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수행평가는 4시간에 걸친 대장정이다.

글쓰기의 기본 단계인

주제 정하기, 내용생성하기, 내용조직하기, 내용작성하기, 고쳐쓰기를

천천히 밟아가는,

그야말로 과정평가다.


단계를 모두 밟지 않고 '내용작성하기'

즉, 쓰기로

바로 들어가길 바라는 학생들이 있지만,

과정을 일부러 평가하기 위해서

각 과정별 활동지를 배부하고

사고과정을 최대한 작성하게 한다.

충분한 설명을 했음에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활동지 우수 예시를 보여준다.

학생마다 선정한 내용이 다르기에

모범답안도 보여줄 수가 있다.

국어 과목의 장점이기도 하다.


과정을 평가한다는 것은

과정이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기에

결과만큼의 비중을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과정은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 우정처럼 너무 가치 있는 것을 숫자로 변환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 머릿속의 모든 사고과정을 알기란 불가능한데 그것을 일부러 캐내어 살핀다 해도 그것조차 결과적인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과정으로 글로 쓰며

작은 것 하나,

고민한 점 몇 개를

낙서로나마 남기는 것은

의미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일부 아이들은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과제를 해내지만

몇몇의 아이들은

과정의 늪에서 결과만 좇다가 완성으로 가는 길을 놓쳐버린다.

나의 목표는

그 몇몇의 아이들이 완성으로 가지 못해도

몇 개의 과정만이라도 알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사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삼백 명에 가까운 전교의 아이들이

모두 각각 질문을 해도

과정평가에서는

친절하게, 따뜻하게 답한다.

평가 중에도 배울 수 있다,

익힐 수 있다고

응원한다.


오늘 수행평가 첫 시간이었던 1반에서는

수업시간마다 자는 영수를 깨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세 번을 깨워도 다시 쓰러지는 아이를

어떤 아이는 왜 깨우냐는 얼굴로 짜증스럽게 본다.

그래도 다시 깨우며 에둘러 말한다.

"이다음에 너희가 조금 더 크면,

잠을 자는 실수가, 실수가 아닌 때가 오고,

큰 후회가 되는 때가 와.

그러니까 선생님은 그때가 오기 전에 후회하지 않게, 나태해지지 않게 가르쳐야지.

힘들면 세수하고 올까?"


아이의 어제에, 저녁에, 밤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 몰라 조심스레 말해본다.

네 번만에 정신을 차린 영수는

마지막 스퍼트를 내어 1차시 활동지를

어찌어찌 채워 제출했다.

아이들의 네 시간은

이렇게 나의 대답과 관심으로 성장과정이 된다.

그리고 남들은 모르지만

나도 자라고 있다.

아이들을 일으키고,

과정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면서.


만점이 전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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