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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13. 2024

귓속말이 전부는 아니니까

내 귀에 노이즈캔슬링

문학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저런 인생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중2라는 사춘기의 상징 같은 학년을 가르치다 보면

친구관계와 이성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

이에 대한 맞춤형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 꼭 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이중적인 걸 넘어

참 다면적이고 입체적이야.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그렇지.

나 자신만 떠올려봐도

어떤 면은 좋지만 또 어떤 면은 싫기도 하잖아? 그리고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해.

아마 세상의 모든 감정의 언어를 붙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면을 갖고 있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면

조금 싫은 면을 보더라도

다양한 면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단다.

그리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좋은 면을 찾아보면 또 있단다.

없다고? 열심히 찾으면 있단다."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식적인 친구의 모습에 상처받은 사연을 들었다.

그 이야기에 나는 질문을 던져본다.


"위선은 선일까?"


-위선은 선이 아니죠. 꼴 보기도 싫은걸요.

-위선도 선은 선이죠. 그렇게라도 하는 게 어디예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사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나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조건을 붙인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위선은

사회생활이자,

나아가 선이라고 생각해.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약간의 거짓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를 맺으며

이런 가면을 쓰는 건,

사회성이 기반이 된 선택이고

눈치 있는 모습이야.

다만 그러한 위선이라도

이랬다 저랬다 혼란한 모습을 보인다면

금방 마음속 표정을 들키는 거겠지."


제법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진도를 마친 뒤

교무실로 내려왔다.

많은 동료들이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앉아 있다.

나도 진실한 나의 민낯을 가리고,

사회생활의 가면을 쓴다.

내가 있는 교무실은

12명 정도의 선생님들이 함께 생활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구든

대화의 장에 참여할 수 있다.

그날은 나도 익히 아는 내용이라

맞장구를 치며 셋이서 대화하고 있었는데,

 동료 선생님이

자기 가까이에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귓속말을 하는 게 아닌가.

분명 몇 초 전까지

나도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빈 귓구멍에 에어팟을 낀 듯,

이미 인간에게 장착된 기능인 듯

노이즈캔슬링 버튼을 켰다.

(분명 내 귓구멍은 뚫려 있다.)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을

나는 그냥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차단했다.

그렇게까지 듣고 싶지도 않다.

나에게 방금 전까지 웃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은

귓속말 하나로 나의 존재를 문 밖으로(어쩌면 우주 밖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로써 나는 그녀가 보인 그동안의 친절이 위선이었음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또 고맙기도 했다.

지금의 행동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전의 친절함을 노력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귓속말이 전부가 아니니까.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여러 번의 친절을 그녀의 좋은 면으로 찾은 것이다.


오늘 아이들과의 대화 덕분에

나는 상처받지 않았고,

내 귀에 노이즈캔슬링 버튼을 켜는 법을 배웠고,

그녀에게 고마운 점을 발견했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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