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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14. 2024

진지함이 전부는 아니니까

킹받는 나의 유치함

킹받는다는 표현,

몇 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듣게 된 표현이다.

왠지 모르게 이 단어는 유행 신조어치고

오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킹받는 상황'

(어딘지 모르게 과한데, 당당하고

기분은 나쁜데, 장난스럽게 그 기분을 표현하고 싶은 상황?)에

'킹받는다'는 단어를 쓰는 것만큼

정확한 묘사가 없기 때문이다.

킹받는다는 말 대신 그동안 장난식으로 '화가 난다, 어이없다, 열받는다, 말도 안 돼' 등을 써왔지만, 이미 '킹받는다'를 안 이상

다른 말은 성에 차지 않는다.

 

직업 특성상 아이들이 쓰는

신조어를 빨리 접하는 편이다.

비속어를 학교 공간에서 남발하는

학생들에겐 지도를 하지만

유행하는 신조어를 쓴다고 지도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 말을 얼른 배워

수업에 적용하는 편이다.

주로 암기를 요하는 문법 단원을 할 때,

선생님이 신조어를 무기로 섞어 수업하면

웬만한 유머 저리가라로 아이들을 웃기게 하고

내용을 기억하는 데도 도움을 줘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조금은 좁힐 수도 있으니

일석삼조일까?


나는 아이들이 알면 '킹받을' 취미가 있다.

고전과 명작 도서 읽기와 고전과 명작 영화 보기,

클래식 듣기의 중요성을 간간히 전파하던 나다.

내가 '나는 솔로'와 '나솔사계'의 광팬이라면 아이들은 분명 킹받을 것이다.

거기에다

내 안의 푼수끼를 총동원해

수다를 떨면서 보는 걸 좋아해서

고전과 명작, 클래식과는 영영 이별한 상태가 된다.


올해 상반기까지의 나를 짓누르던 고통도

나솔을 볼 때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유치함의 끝까지 가서

입으로 댓글을 달며 시청을 하면

남편과 나는 그저 유치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이럴 땐 죽이 잘 맞아 다행이다)

이런 웃음은 무한도전 이후 아주 오랜만이라

이 프로그램이 장수하길 기도해 본다.


흥부전에는 아주 웃긴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중 흥부 아내가 아이들 먹일 식량이 없어

우는 장면의 흥부의 모습은 한심하기보다 경이롭다.

흥부는 아내를 다독이며

관아에 가 곡식을 빌려 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아내는 현실적이라,

가난한 백성에게는 곡식을 꾸어주지 않을 거라고 꼬집는다.

그래도 흥부는 기어코 가겠다며

겉옷을  장 속에서 꺼내 오라고 시킨다.

아내가 우리는 장롱이 없다고 하자,

흥부는 닭장은 장이 아니냐며 농담을 한다.

국상이 들었을 때 남이 쓰던 흰 갓을 얻어

굴뚝 속에 넣어놨다며 갖고 오라고도 한다.

흥부는 희대의 농담꾼이자 개그캐였던 걸까.

실은 그의 유치함은 특유의 긍정성에서 온 것이다. 우는 아내에게 잠시나마 '킹받는' 농담을 건네며, 어이없어 웃게 만드는 것이다. 

아사 직전의 아이들을 보며

웃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울기만 한다고 해결되지도 않으니

웃으며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어떻게든 곡식을 마련해 오겠다며 관아로 간 흥부는 매품팔이 계약을 하고 돌아온다.

죽을 수도, 크게 골병을 얻을 수도 있는

매품팔이를 하겠다고 하자

흥부 아내는 절대 안 된다며 흐느낀다.

이때도 흥부는 쓸모없는 볼기짝 매 좀 맞으면 어떠냐며 농을 친다.


'킹받는' 유머 속에

비극이 있고 참담한 심정이 있다.

각자가 겪은 지난한 시간들이 있다.

나도 힘든 시절을 우울하게만 보내기 싫어

가장 웃긴 예능을 찾아 본 것뿐이다.

처음엔 웃는 게 어색할 정도였는데 

점차 진심으로 낄낄, 깔깔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흘렸던 눈물도

감정의 정화 작용을 했지만,

웃음도 마찬가지의 작용을 했고

나아가 앞으로 나아갈 힘도 주었다.


출연자들을 보며

"아~~ 킹받아!"

외치면서 함께 보는 사람들과 깔깔 웃는다.

그렇다고 나의 우울과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다. 흥부의 개그와 유머가 나에겐 없으니

이렇게 충전하는 것이다.

유치함을 아이들에게 들키면 킹받겠지만!

(교사라고 해서)

고전과 명작, 클래식만 사랑할 순 없으니까.

진지함이 전부는 아니니까.

수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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