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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Oct 04. 2024

결정이 전부는 아니니까

올라운더보다는 스페셜리스트

45분의 수업이 끝나 교실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영희가 순박한 얼굴을 하고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똥맛카레와 카레맛똥 중 어느 것을 선택하실 건가요?"


띠용~~하는 표정에 주변 아이들이 몰려와 궁금하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무슨 질문이 이래?"


황당해하는 선생님 얼굴을 구경하며 한참을 깔깔거리던 아이들은

똥맛카레파와 카레맛똥파로 나뉘어

설전을 펼친다.

이것은 바로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팽팽한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번 질문은

가히 최고의 내적갈등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똥맛카레는 누가 뭐래도 똥맛이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다.

카레맛똥은 누가 뭐래도 똥이지만 카레맛은 분명하단다. (설정 한번 기똥차다!)

참 고민 끝에 나는 똥맛카레라는 답을 내놨고

설전을 벌이던 두 개의 파 중

똥맛카레파는 만세 자세로 환호성을 질렀다.

함께 환호성을 지르다가 갑자기  생각.

별 의미 없는 이야기도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다니!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오랜만에 진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관계의 깊이는 얼마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이야기로도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느냐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아이들 앞에 놓인 미래는

밸런스 게임보다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고등학교를 갈지 고민하는 아이들은 

극한의 밸런스에 개인의 기호 한두 방울을 더해 살짝 더 무거운 쪽을 골라내야 할 정도니까 말이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선택과목은 어떻게 골라야 할지,

내신 성적이 애매한데 정시파이터가 되는 게 맞는 건지,

아무리 공부해도 나오지 않는 과목은 포기하는 게 맞는 건지...

그나마 행복한 고민이라도 하려면

일단 모든 걸 잘하고 보라는 무거운 조언

내가 참,

가볍게도 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는

고민과 선택들을 잘하기 위해 이런 극한의 게임으로 단련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러나저러나 힘든 건 매한가지니,

잠시 농담처럼 웃고 넘어가야 하는 걸까.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는

나의 20대 초반의 꿈은

아직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개 교사 개인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원대하고 철없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20대 때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 꿈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공교육의 붕괴라는 말은

이제 꽤나 뻔한 말이 되었고,

누구도 놀라지 않는 클리셰가 되었다.

초등부터 학교는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라고만 이야기하고 지식은 학원에서 배운다고 한다. 중학교는 교과교실제, 집중이수제, 자유학기제라는 폭풍을 겪고

이상한 곳에 표류했다.

난이도를 고려하지 않고 산출되는 내신성적은

학교 시험을 쉽게 만들고,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가서 치른 첫 시험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실수를 하거나 시험을 망치면

인생이 무너졌다는 생각에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고민 없이,

신중하지 못한 채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

전체 교육의 시스템을

그야말로 '갈아엎어야' 하는데,

어디서 좋아 보이는 정책들을 갖다 붙이고,

잘하고 있는 것엔 예산을 없애고,

'미래'와 'AI'가 붙는 것엔 과도한 예산을 책정해 '돈을 써서 없애'려는 행위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초학력 예산이 삭감되고, 급식 예산까지 줄이려 한다니 기가 찬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잘하는 한 가지를 더 잘하게 하는,

스페셜리스트를 키워내야 한다.

모든 걸 잘하라고 해서는 아이들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데

기본 신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결정이

과도한 책임이 되지 않도록

결정이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학교가 아이들을 이끌 충분한 능력과 에너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에게도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


'똥맛카레'를 선택한 게

결과적으로 잘못됐다고 해도

사회는 그 선택을

경험으로,

자산으로

인정해 주고

다른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교육은,

이렇게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좌절과 절망 끝에

다시 교육으로 돌아와

배우고 성장해서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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