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쯤이면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학급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인원이
열에 아홉이라고 아들이 말했다.
1학기 때도 남학생 11명 중 9명이 출마했는데 출마하지 않은 두 아이 중 하나가 자기라고 했다.
소극적인 아이로 비칠까 걱정이 됐다.
꼭 선출되지 않더라도,
도전하는 자세는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가보라고 권했지만,
아들은 두 번째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초등학교 임원은 5학년부터야. 그때부터 전교임원선거에 나갈 수 있거든!"
아!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소심함이나 창피함 때문에
도전조차 못하는 걸까 걱정 됐는데
그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5학년 때 누가 뽑아 줄거란 확신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허세가 웃기기도 했다가,
전교임원까지 생각하는 광활한 포부가
처음의 내 걱정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기까지 했다.
어쨌든 아이는 이번 4학년 2학기 선거는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나는 하고 싶을 때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2학기 선거에 홀린 듯
출마를 했고 3위를 했다.
3위를 하고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수업을 다녀와서 본 휴대폰엔 아들에게서 온 부재중전화가 10통이나 찍혀 있었다.
반장도, 부반장도 되지는 못했지만
3위라는 사실이 꽤나 기뻤나 보다.
임원이 됐을 때의 책임감과 부담감도 없을뿐더러
각종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며 '3위라 오히려 좋아!'를 외친다.
초긍정적인 사고방식에 피로감이 싹 풀린다. 여유로운 척 하지만 언제나 긴장돼 있던 내게 진정제이자 비타민이 되어주는 아들이다.
하지만 진짜 궁금한 건
아들이 어째서 선거에 출마했는지였다.
퇴근을 하고 아들에게 물으니
"엄마가 도전해 보는 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갑자기 나가보고 싶어서 나갔는데, 준비를 못해서 말은 잘 못했는데 그래도 친구들이 많이 뽑아줘서 기분이 좋았어요."
내가 아이에게 좋은 코치이자 멘토가 되어준 것 같았다. 도전 자체의 뿌듯함을 경험했다니! 그것만으로도 아이의 기억 한편에
큰 자존감의 뿌리가 자리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이가 미리 결심을 하고
함께 좋은 리더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준비도 했다면 결과도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감투가 전부는 아니니까.
리더의 품격이 뭔지
아이도 생각해 볼 나이는 되었으니까.
앞으로 천천히 직책에 맞는 품격을 이야기해 봐야겠다.
리더의 종류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는
대화와 포용, 그리고 책임에 있다.
이 세 가지를 하려면 넓은 마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러한 리더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장담하긴 어렵다.
세 가지 중 책임지는 리더가 가장 없는 것 같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약한 존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장면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포용하는 것은 몇 번 본 것 같지만,
그것이 진심인지까진 알 수 없다.
대화하는 것은 조금 더 본 것 같지만,
의미가 있는 내용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리더의 힘으로 뭉개진 의견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40년을 넘게 살며 보아온 리더의 모습들이
대체로 이러한데
대화하고 포용하며 책임지는 자세로
리더가 되라고 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옳은 일일까?
세상은 어쨌든 이기적이며 냉정한 리더가
살아남는 구조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렵더라도
나는 아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에 대해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감투가 전부는 아니니까.
리더의 품격이란 감투가 아니라
따뜻함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언젠가 내 아이가
아주 작은 모임의 리더밖에 하지 못하더라도 훌륭한 리더로 스스로 품격을 느끼며
마음속 자존감의 나무가 풍성하게 자라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들의 계획이 성공하길 바라며(?),
학교에도, 이 세상에도
훌륭한 리더가 더 많아지길 기도한다.
그래야 이 사회의 자존감도 더 풍성 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