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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25. 2024

죽음이 전부는 아니니까

살아있는 것과 나누는 우정

사춘기 때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죽음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제법 심도 있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 고민은 가족과도 같았던 강아지를 갑자기 잃은 중1 때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강아지, 까미.

까만 털이 점차 회색이 되어갔지만,

까미는 까미였다.

까미는 예방접종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에 치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산책하고 싶은 까미의 마음을 읽고

잠시 내려놓은 찰나에

어디선가 나타난 오토바이에 치인 것이다.

쓰러진 까미를 부둥켜안고

그대로 왔던 길을 내달렸는데,

우연히 내 손바닥과 맞닿은 까미의 가슴팍에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촉각이 청각이 되어 귀에 들렸다.

쿵, 쿵, 쿵...쿵......쿵.............

쿵....................쿠............

어느 순간 뚝 끊긴 심장소리에,

내 눈에 뜨겁게 차오르던 눈물의 부피감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병원에 다다르기도 전에

길바닥에서 아직 따뜻하기만 한 까미를 안고

동화처럼

눈물 몇 방울에, 진실한 사랑에,

까미가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이렇듯 죽음은 나에게 감각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감으로.

살아있던 것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날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몇 날 며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까미가 (실제로) 눈에 아른거려서

영혼이 왔다 갔구나, 했다.

늘 그렇듯 시간은 흘렀지만,

아직도 까미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눈물로 꽉 찬다.


작년 내가 겪었던 일들은

까미의 교통사고처럼

불현듯,

아무 조짐 없이, 잘못 없이 일어났고

나도 그로 인해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위험신호였다.

위험하다는 자각이 들었을 때,

나는 까미의 가슴팍에서 전해진 죽음의 촉감을 되새겼다. 그런 슬픔이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계속 생각했다.

계속 계속.

 

인디언의 행복은

살아있는 것과 나누는 우정과 연대감에서 온다고 한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살아있는 존재들과 우정을 나누는 행복은 살아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우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일부 행복까지 회복 불능이 된다.


자식 일이라면 종교든 미신이든 의미를 부여하는 엄마는,

"네가 삼재라 그래, 삼재라. 내년이면 나가는 삼재니, 생일까지만 버텨."

라며 나를 다독이셨다.

들어오는 삼재와 나가는 삼재가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걱정을

"그럼, 그리고 나 이제 괜찮아."

라는 말로 덜어본다.

평소에 무심하던 시어머니도,

내가 겪은 일이 뉴스에  나오는 일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죽으면 안 된다, 죽으면.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 안돼."

주기도문처럼 외셨다.

"죽긴 왜 죽어요. 그런 생각 해보지도 않았어요. 걱정 마세요."

라고 했지만, 말과는 다르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동안 꽤 했었다.

하지만

죽음보다 삶을 택함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때때로 교권을 외치면서.

죽음이 전부는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엔, 나처럼

아동학대로부터 학생을 지키기 위해 신고했다가

도리어 고소를 당해 1년을 넘게 고통받은 한 선생님의 사연을 접했다.

나는 그 선생님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공감한다.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억울했을지,

얼마나 화가 났을지, 자신의 교직인생을 얼마나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을지.

교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다

억울하게 소송에 휘말린 사연은 점점 늘고 있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알까?

일을 하다 당한 소송인데,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어디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걸.

국가는 교사 저 밑에 위치한 공노비쯤으로 여기고 있다.

목소리가 큰 학부모와 숨기 좋아하는 윗사람들은 왕의 DNA라도 정말, 가진 것일까?


그 선생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또 앞으로 비슷한 일을 겪을 선생님들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엄마처럼, 우리 시어머니처럼,

말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죽지 마세요.

선생님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살아서,

힘든 선생님께 이런 말을 전하듯,

선생님도 그렇게 해주세요.

살아있는 존재와 우정을 나누는 기회를

선생님 자신에게도,

선생님 주변에게도 계속 주세요."

라고.






-이 글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계신 선생님들께 조금의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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