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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Oct 07. 2024

생일이 전부는 아니니까

드디어 삼재가 나갔어!

작년 생일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퇴근 이후, 한밤중, 새벽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분풀이를 해대는 학부모의 문자..

국민신문고에 올린 허구로 가득한 민원글..

동료들의 무관심..

사진처럼 몇 컷이 바랜 기억 속에 지나갈 뿐이다.

어쩔 도리가 없이 나는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이미 여름방학 때 한차례 있었던 고소에

큰 데미지를 입은 상황이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는 내 상황을

학부모는 알지도 못했지만

알았어도 봐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더 버틸 여지는 있었다.

관리자가 나와 한마음으로 대응을 했다면 말이다.

다들 불쌍한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똥물을 뒤집어 쓴 나를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5일의 평일과 이틀의 주말을 더해 일주일 병가에 들어갔다.

잠시 숨을 고르고 냉정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의 절차가 진행됐고, 나는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병가 7일 중엔 내 생일이 있었고,

가족들은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 생일이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나는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무욕의 상태였다.

이불속에서 작은 소리도 내지 않고 살아 있지 않은 것처럼 가만히 웅크려 있었다.

몇십 분마 훌쩍이는 들썩임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가해자들이 쏟아 놓은 말들이

목구멍에,

심장에,

폐에 걸려 호흡도 소화도 배설도 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없다는 것이

그 느낌을 더 강화시키고 있었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순 없지만

'억울함'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 잘못이 있었다면, 

오히려 금방 해결되었을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면 그만이니까.

인정할 잘못이 없다는 게 나를 더 병들게 했다.


1년이 지났고, 생일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생일을 맞이함으로써

나는 1년을 버티어냈음을 실감했다.

무욕의 삶에서 다시 무언가를 조금씩 원하는 삶이 되었다.

절제로 무욕의 경지에 이른 수양인이 아니라면

무욕의 삶은 우울증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번 생일은

맛집에 가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먹고

한강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아들과 함께 튀어 오르는 메뚜기를 잡으려다

머리를 콩, 부딪쳐 깔깔 거리며 웃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과 행복이 다시 나에게 왔다.

시간은 만병통치약까진 아니라도

급한 대로 받은 처방약이 되어

고통을 과거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남편, 아이와 함께 보낸 생일은 이미 지났지만, 며칠 뒤 음력 생일잔치를 해주시러 부모님께서 오신다.

엄마는 작년부터,

믿지도 않는 미신과 운을 탓하며 말씀하셨다.

"네가 삼재라 그래, 삼재라. 내년 생일에 삼재가 나간다. 조금만 버티라!"

(평소의 엄마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에 가까우시다)


엄마가 늘 입에 달고 계셨던

그 삼재가,

드디어 나가나 보다.

삼재도, 생일도 전부는 아니지만.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셨을 엄마, 아빠께

귀여운 막내딸로 돌아가,

소유욕을 불태우며

어리광도 부리고 애교도 부릴 것이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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