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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Aug 14. 2024

유람선

D+80

 저 튼튼하고 커다란 배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망망대해를 그저 한 줄기 바람에 의지하여 나아간다. 누군가는 이 문장을 읽고 과학의 진보나 발전을 배제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의 진보나 발전 역시 터무니없이 강하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현상 앞에서는 무의미하지 않은가.

깊이와 넓이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하는 여정을 자신 있게 떠나는 사람들을 우리는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게 인생이든, 항해이든 간에. 나는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손익, 혹은 조건 등을 따지지 않고 무언가를 자신 있게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우선 나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들 역시 풍향, 파도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을 충분히 고려한 뒤에 바다에 올라탈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기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후 저 푸른 하늘에 몸을 맡기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여건이 충분히 만족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무언가를 시도할 시간과 금전이 불충분하지 않음에도 고민하고 망설이는가. 대체 어떠한 요인이 나의 당찬 항해를 방해하는 것인가.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 혹은 생물에게 영감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최근에는 그토록 혐오하던 벌레에게도 영감을 받았다. 어두운 공간에서도, 어떠한 위험요소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빛을 향해 달려다는 그것들. 그러지 못하는 내가 어찌 그것들을 비하하고 역겨워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배울 점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살아가는 데 있어 예측 불허한 상황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 치 앞을 볼 수 없더라도, 갑작스러운 태풍과 쓰나미가 몰아쳐도 한 번은 부딪혀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난 언제까지 세세한 것까지 따져가며 최대한 안정적이고 정적인 태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일까. 부러진 것은 다시 붙이면 되며, 넘어지면 일어서면 될 것을.


 오늘따라 유독 파란색의 잔잔한 바다가 보고 싶다. 있는 힘껏 몸을 내던지고 하염없이 그 아래로 가라앉고 싶다고 느낀다. 아무 생각 없이 헤엄치고, 때로는 갑자기 몰려온 파도에 물을 먹어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진다. 그리하여 바다로 나아갔다. 등에 바람을 지지도 않았고, 구명조끼와 같은 장비도 착용하지 않았다. 선크림이나 기상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우선 발부터 담가보았다. 이때의 수온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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