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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borambo Dec 28. 2023

교토 야요이켄(やよい軒)

동굴 속 흥미로웠던 기억

일본만 가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돌아온다.
식감의 공포 

 

  맛집에 큰 욕망이 없는 편이라 김밥천국처럼 여겨지는 야요이켄을 세 번 정도 갔고, 갈 때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두 번은 충격적인 음식을 먹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불운한 하루를 보낸 한국인 청년과 식사를 하게 된 일이다. 


 충격적이었다던 음식에 대해 말하자면, 식감의 공포를 준 음식과 상상 밖의 음식을 먹은 것이다. 워낙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익숙할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먼저 식감의 공포를 줬던 음식은, 단순히 알록달록해서 선택했던 메뉴였다. 오크라, 낫또, 참치회(?), 단무지, 다시마, 진녹색 해조류,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소스에 간장 섞인 날계란을 전부 섞어서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사진 참고)였다. 그렇게 모두 섞으면, ㄱㅏㄹㅐ와 콧ㅁㅜㄹ사이 어딘가를 헤매는.. 그런... 것을 음식으로 착각한 착각이 든다. 그래서 한입 먹고나면 오만상을 쓸 수 밖에 없는데 묘한 것은, 그 표정으로 다 먹게되는 또 이상하게 맛있는 그런 희안한 점이다. 초장에 너무 강한 특훈을 받은 걸까. 이 식사를 한 뒤로 낫또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번은 상상해본적도 없는 ice된장국을 먹게 된 것이다. ice된장국은 주의사항만 간략히 기록해 두면 될 것 같다. 일단 ice된장국이 있다는 사실. 이라는 한자가 무진장 작게 쓰여있을 수 있다는 사실. 사발에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오이가 들어간, 밀키스맛 두부를 맛 보고 싶지 않다면 꼭 주의할 것. 혹시라도 맛이 궁금하다면, 얼음을 입에 물고 냉장고 문을 열어 된장 한 수푼 입에 넣어 보시라..


 불운한 하루를 보낸 청년은 내 눈 앞에서 그날의 마지막 불운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불운은 키오스크 현금투입구에 카드를 넣으며 시작되었다. 카드를 먹은 키오스크는 바로 뒤에 서 있던 나를 필두로, 늦은 밤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 온 모든 사람들을 가게 밖까지 줄 세웠다. 아마 나 같은 관광객이 봤다면, 야식 맛집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 줄이었다.

 어느 정도 무진장 긴 줄이 완성되고 나자, 5-6명 정도의 가게 직원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한명씩 돌아가며 키오스크를 열 시도를 했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마치 뽑히지 않는 엑스칼리버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직원은 손님 대열을 자리에 앉히고 수기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걸 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벌려고 최대한 천천히 주문을 하며 상황을 관전했다. 청년은 연신 사과를 했는데 -내가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라 그런가 기다린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대신 나를 보며 사과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미안하지만 너무 웃겨서, 그냥 대놓고 웃었다. 모든 주문과 현금 계산이 끝나고 홀직원 및 주방이모들까지 나와 씨름한 끝에 그 문제의 카드와 식은땀을 흘리며 덩그러니 홀에 서 있던 청년이 구조되었다. 

 청년은 지친 표정으로 가게 안 유일한 한국인인 내게 다가와 같이 먹어도 되겠냐고 묻더니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왔다. 20-30분 사이 한 맘고생으로 하소연 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고생하셨네요, 하고 마주한 그는 그 날 겪은 불운을 모두 말해주었는데, 듣는 내내 저럴 수가 있나 싶어 또 대놓고 웃어버렸다. 그는 주문한 규동보다는 국밥에 소주가 더 필요해 보였다. 

 그의 불운은 출발 전 부터 시작되었다. 6년(?)정도 만에 다시 온 여행에 아쉬움이 없기 위해 그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오전 도착 비행기를 끊고, 주유패스를 준비하고, 유심, 교토여행 책을 읽고, 근교여행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여행은 출발부터 버벅거렸다. 비행기 연착, 연착 문자 확인 못 한채 공항에 도착, 괜히 일찍 일어나 공항에서 몇 시간을 대기,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교토까지 바로 올 특급열차를 놓침, 로컬 트레인을 타고 주유패스라도 찾으러 오사카 시내로 갔으나 17:00에 문닫는 역에 17:02쯤 도착, 캐리어를 끌고 달려가며 내려가는 셔터를 바라 봄, 결국 주유패스 없이 다시 로컬 트레인을 타고 교토로 출발,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도착, 가려던 맛집은 문을 닫음, 그렇게 그나마 늦게까지 영업하고 있는 이 야요이켄에 도착한 것이다 (사실 중간중간 또 자잘한 실패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그 날의 하이라이트로 현금 투입구에 카드를 넣었다. 

 오사카에서 교토로 막 넘어왔던 나는, 그때 여러 이유로 마음이 발바닥 밑에 붙어 저벅저벅 밟고 다니는 기분이었는데, 그렇게나 불운한 하루를 겪은 청년 덕분에 정말이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렇게까지 웃지는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깔깔- 웃었을 것 같다. 또 그렇게 관전했던 것 처럼, 그때의 내 모습도 시간과 공간이 멀어지고 나니 점점 별 일 아닌 것 처럼 여겨졌다. 


 밥을 먹고 나서 한 블럭 정도 같은 방향이라 걸었는데, 숙소 위치를 물어보니 무려 25분 거리였다. 구글 지도를 확대하지 않고 출발해서 이 정도 거리인지 몰랐다고 후회하는, 준비성은 철저했지만 대단히 허술한 청년. 밤에도 더웠던 여름이라, 숙소에 돌아가면 다시 씻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며 손을 흔들던 불운 컬렉터 그 청년. 교토에서 남은 날을 보내면서, 또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헤어지는 순간까지 맥없는 모습으로 웃겨주던 그 청년의 여행이 궁금했다. 과연 그는 그 날 꼈던 모든 불운을 끊어내고,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을까? 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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