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밖 시간 1
7일 전 새벽에 큰 눈이 왔다. 아빠가 떠나던 해에 1월 어느 날에도, 그 해 12월 아빠가 떠날 때도, 그리고 바로 맞은 설날 첫 제사 때도 큰 눈이 와, 눈을 떠올리면 아빠가 생각나고 눈이 오면 아빠가 느껴진다.
7일 전 저녁엔 지방 출장지에서 5시간을 운전해 모임에 한 언니의 청접장을 받으러 서울엘 갔다. 저녁 9시에 도착해 가만히 있어도 피곤했고 경기도인 집에 돌아가려면 한시간 언저리를 더 운전해야했다. 하지만 수다에 푹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12시 30분이 넘었고 눈이 오고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반가웠다. 눈이라니! .. 하고 생각하던 찰나, 졸음운전의 가능성과 아빠와 겪었던 1월의 어느날이 떠올랐다.
아빠가 떠나던 해는, 운전면허를 막 딴 상태라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 아빠의 직장에서 집까지 가는 걸 코스로 정하고 운전연수를 하고있었다. 게을렀던 나는 꾸준히 배우지 않고 뜨문뜨문 퇴근길에 찾아갔기 때문에 실력이 늘 틈이 없었다. 덕분에 속도를 50만 밟아도 고라니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 1월의 어느 날엔 어쩐 일인지 집에 뒹굴뒹굴 누워있다가 일어나 아빠에게 갔다. 경기도민의 발, 노선이 긴 좌석버스를 타고 가는데 눈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해맑게도 그래 이게 겨울이지!!! 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연신 눈을 담았다. 아빠의 직장에 도착했을 무렵 눈은 두텁게 쌓였고, 버스에서 내려 아빠에게 다가가는 3분 정도의 시간동안 나는 유명한 짤의 주인공 박ㄷ기 기자님처럼 눈사람이 되어있었다. 정말 신이 났다.
"아빠~!! 눈이야 눈~~!!"
"멍청한 놈, 이렇게 눈이 오면 집엘 어떻게 가냐."
"왜 못 가? 차타고 가면 되지?"
아무튼 멍청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 눈 때문에 운전을 안 시키겠다는 아빠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툴툴 대다 출발한지 10분만에 입을 다물었다. 그날의 눈은 러시아도 이정도로 올까? 하는 물음이 들 정도로 많이 내렸다. 늘어나는 눈의 양만큼 집에 도착할 시간도 무한대로 늘어났다. 어떤 터널은 입구 부터 막혔고, 빠져나오는데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터널 밖에 나오니 차선 없는 운동장 처럼 버스와 차들이 미끌어져 도로 한복판에 가로로 서 있었다. 길가엔 바퀴가 헛돌아 귀가를 포기한 사람들이 넘쳐났고, 사고 차량을 밀기위해 나간 사람들, 담배를 피는 사람들, 그래도 가보려는 차들 등등등 본 적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 그 때까지도 '오... 너무 신기해...!' 같은 말을 남발했고, '멍청한 놈'이라는 말도 그 날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경기도 어느 골짜기 산중턱에 있는 집 까지 가는 길엔 크고 작은 언덕이 많아, 언덕마다 멈춘 차들이 보였다. 바퀴가 헛 돌아 뒤로 떠밀려 내려오는 차도 보았다. 집에가는 길이 그런 차로 모두 막혀, 여기저기로 우회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길에 들어 설 때마다 집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심각해짐을 깨달았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배도 고팠다. 얼마나 더 헤메야 하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음식이 간절했다. 3시간 정도 헤메고 나니 우리 앞에 편의점이 나타났고, 빵과 우유를 사서 허겁지겁 먹으며 다시 길을 찾았다. 원래는 40분 거리인 곳을 4시간 반만에야 겨우 집근처에 도착할 수 있게되었다. 그나마도 아빠의 침착함과 환상적인 운전스킬 덕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친 우리는 차를 동네 마지막 언덕 아래에 두고 집까지 걸어 올라갔다.
"아빠 그런데 오늘 진짜 내가 운전했어야 하는 거 아냐? 나중에 또 이렇게 눈 오는 날에 어떻게 해? 내가 오늘 운전해서 배웠어야 하지 않아?"
"멍청한 놈, 이런 날엔 아예 운전 하지 마."
"아, 아..?!"
7일 전, 청접장을 받고 눈이 온다는 말에 ‘이런 날’이 떠오른 나는 부랴부랴 시동을 걸고 여전한 멍청이가 아니기 위해 기도했다. 아무 신이시여 제발 집에 도착할 때 까지만 눈이 안 오게 해주십쇼. 듣던 아무개의 신이 언감생심 반문하듯, 출발과 동시에 미친듯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강북에서 내부순환로를 타고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이미 1차선과 3차선이 사라졌고, 모든 차가 2차로에서 서로의 바퀴 자국을 따라 서행했다. 운전대에 붙어, 의쌰의쌰 서로를 믿으며 함께 갑시다! 외쳤다. 그렇게 외치며 함께했는데 모두 강남 어귀에 사는지, 다리 건너 수서쪽으로 틀자마자 차 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았다. 우리 이 눈길을 함께 헤쳐나가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차마 그들이 빠져나간 지난 길은 돌아 보지도 못한채 정면의 눈길을 바라보며 섭섭하다 외쳤다. 눈길엔 평지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퀴가 흔들렸다. 브레이크를 최대한 밟지 않기위해 10km-20km사이의 속도로 비상등을 켠 채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점점 외롭고 불안해 져 믿을 구석을 찾아 중얼 거렸다. 조수석에 걸어 둔 아빠의 외투를 아빠로 여기고, 자동차를 몇년 전 1월 아빠와 성공적인 폭설 대모험을 한 수퍼 붕붕이로 여겼다. 그리고 4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어쨋든 집엔 도착했다,는 기억을 희망으로 삼았다.
"붕붕아, 누나(?)는 나보다 너를 더 믿는다 붕붕아... 너는 갈 수 있어! 알지? 우리는 갈 수 있어! 기억나지?", 따위의 헛소리를 내 뱉고, 아빠의 외투에도 말을 걸었다.
"아빠 멍청한 놈이라고 하고 있는 거 알겠는데, 나 집 보내줘!!!!! 알았지!?!??!?!"
이런 식의 소리를 계속 내 뱉으며, 사고 현장을 지나고 바퀴를 굴렸다. 한참을 꾸역꾸역 가다보니 생각난 두 개의 큰 언덕. 우리 집은 그 두 언덕을 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두 언덕 모두 민가와 떨어져있고 야산에 덩그러니 깔린 길 같은 곳이다. 걱정이 생기자마자 첫번째 언덕이었다. 악셀을 밟았더니 바퀴가 헛돌았다. 뒤로 밀려나는게 느껴졌다.
"...아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빠!!! 나 이렇게 밀려날 순 없어!!! 어떡해!?!?!?!"
그 순간, 거짓말 하나없이, 정말 영화처럼 오른쪽 합류차선에서 제설차가 등장했다. 극적인 상황에 입이 벌어졌다. 내 인생에 이런 찬스가? 제설차가 바로 내 앞에 기적처럼 뿌려 준 마지막 희망, 염화칼슘을 밟기 위해 풀악셀을 밟았다. 붕붕아 가자!!!! 그 날 급하게 이름지어진 붕붕이도 눈치를 챘는지 힘 내주었고, 제설차를 따라 동네로 올 수 있었다. 우연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눈 속에서 이렇게 드라마틱한 순간을 겪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제설차 뒤를 쫓은 1시간 동안, 아빠에게 연신 물어댔다.
"진짜? 아빠 이거 진짜야???"
믿기지가 않았다. 얼떨떨한 상태로 3년전 아빠가 세웠던 곳에 차를 세우고 붕붕이의 고생을 치하했다. 그리곤 주섬주섬 짐을 챙기려는데 청첩장을 받은 언니네 집에 외투를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가 늘 얘기하던 '멍청한 놈' 그 자체임을 여지없이 느끼며, 조수석에 둔 오늘의 아빠, 아빠의 외투를 입고 집에 돌아왔다. 어쨋든 이렇게 큰 눈이 오는 날엔 아빠랑 집에 돌아오는 거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고생스럽지만, 종종 더 멍청해 져도 좋겠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