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하굣길, 애미의 가슴팍에 가방을 내 던지듯 맡기고 놀이터 옆 축구장으로 내달리는 유월이.
오늘 급식메뉴는 뭐였어? 뭐가 제일 맛있었어? 다치거나 결석한 친구는 없고? 쉬는 시간엔 무슨 놀이하고 놀았어? 나누고 싶은 말이 잔뜩이지만 달음박질하며 가는 아이의 뒤통수를 쫓아 잰 발걸음질을 한다. 축구장 옆 적당히 그늘이 진 벤치를 찾아 앉아 숨을 고르는 것까지 해내면 하굣길 미션 클리어.
마음을 청량하게 하는 가을하늘과,바스락 소리를 내며 뒹구는 낙엽까지 너무나도 완벽해서가을감성에 촉촉하게젖어들던 중이었는데.
볼 다툼 중 상대아이에게 부딪쳐 공중에 솟구쳤다 구르는 아이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같이 볼 다툼을 하던 아이는 나풀거리며 넘어진 종이재질의 아이를 보고 곁에서 웃고 서있다.
맙소사. 저 종이인형, 내 새끼다.
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괜찮아?"
"응, 나 괜찮아 엄마."
무릎을 이렇게 다치고도 괜찮다니. 엄마는 하나도 안 괜찮다. 몸을 키워야 할까. 불쌍하다.
"그러게 축구하면서 힘쓰려면 밥을 많이 먹으라고 했잖아. 넘어진 널 보고 웃고 있는데 왜 너는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누워만 있어!" 댐이 터졌다. 말이 필터를 거치지 못하고 쏟아져 나온다.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손끝이 저릿해 올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종이인형보다 세 살 많은 혈육은 축구할 때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법을 몸소 시범을 보인다. 얼씨구 잘났다.
밑바닥을 다 보이며 기분이 태도가 돼버리고 만 나와는 달리 유월이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다음 본인의 일정들까지 잘 소화해 냈다. 시간이 지나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으니 그제야 내 마음이 조금 더 보였다.
난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무릎이 다쳤다는 걱정, 유약한 몸으로 운동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 내 아이 상처받을 일 차단하지 못했다는 생각. 이것 때문이었다. 내 아이를 세밀히 돌보려 했던 마음이었을 뿐인데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고 있었던 터.
걱정한다고 운동하는 아이가 다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천천히 살필걸 그랬다. 매일매일 한 시간 이상 운동하며 체력을 기르고 있으니 오늘의 유약한 몸도 내일은 더 좋아질 거라 괜찮았다. 내 아이 상처받지 못하게 날을 세우고 미어캣이 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일에는 눈을 감아보기로 했다.
아이는 내게서 배운 대로 살기 때문이다.
다정한 관찰자.
내가 되고 싶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든 생각들에 빠져있지 말고 순수한 내 아이를 따라 터널을 걸어가리라.
가자, 엄마!
*사진출처: by PublicDomainPictures, Andrew_Poyntonon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