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미 Dec 04. 2024

나는 뛰는 건 딱 질색이니까.

(여자)아이들 말고 그냥 여자 사람이 부릅니다.

천 번을 흔들려 어른이 된 내게, 이제 아프니까 애엄마라는 새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싱싱한 활어처럼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장병과 주말을 보내다 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월요일이라는 탈출구가 기다려진다.

(죄 없는 자 나를 돌로 치소..)


카페인의 힘을 빌려보지만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은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한의원이나 재활의학과를 전전해 보아도 몸의 개운함은 그때 잠시뿐이다. 그렇게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휘청거리며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아이들오래,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체력장 날은 내게는 곧 수치의 날이었다. 나는 'ㄱ'으로 시작하는 내 아버지의 성씨를 줄곧 원망했었다. 삼 년 내내 학급에서 제일 먼저 시범을 보이는 출석번호 1번, 시범조였기 때문이다. 운동신경까지는 물려주지 않으신 아버지 덕분에 내 시범은 매번 폭소 폭탄이었다.


개그 정도로 끝냈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텐데. 그중에서도 '오래 달리기'는 내 몸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숨이 차게 뛰는 건 쉬는 시간 10분 안에 매점으로 뛰어가 한 손엔 삼각김밥을, 한 손엔 레쓰비를 들고 다시 교실까지 뛰어오는 것만으로도 족한 일이었다.


"난 못 뛴다. 안 뛴다. 오래달리기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꼭 쓰셔야 하냐." 겁을 상실했던 18살의 나와, 당시 젊은 피였던 28살 담임선생님이 외나무다리 한가운데서 대치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결국,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운동장을 함께 뛰어주셨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달리면서 만난 풍경과 기록.



달리기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던 내가 내년 봄열릴 마라톤 참가를 목표로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은사님이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것 같다. (아 아직 무덤에 계실 땐 아닌가.)


물론 처음엔 1km도 뛰지 못해서 걷다 뛰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잡다한 생각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다. 뛰다 보면 몸이 힘들어서 생각을 멈췄고,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니 선명하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달리기는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자 내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내게 집중하다 보니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마련이었다. 글쓰기가 그랬다. 매일 즐겁게 술술 써지지는 않지만 반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이 분명히 생겼다.



출처: 유튜브 '채널 십오야'
출처: tvn <텐트 밖은 유럽> 캡처


유해진 배우를 볼 때마다 나도 그와 같이 단단하고 탄탄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텍스트로는 표현되지 않는 강단이 tv화면 밖으로 흘러넘쳤다. 당차 보이지만 겸손한 모습으로 진가를 드러낸 나의 마라톤 롤모델.


속도와 싸우지 않는다는 그 처럼,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한 여정의 한걸음을 내딛어 본다.



나만의 페이스로 달려보겠다.

마라톤도, 인생도 그렇게.








사진출처: by u_k6hc0l8xbv on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