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의 리듬으로 알려진 이 길고 긴 이름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전래동화에서 비롯되었다.
그 옛날에는 환갑만 되어도 마을에서 잔치를 열어 무병장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 오래도록 자식이 없던 영감님이 환갑이 다 되어서야 아들 하나를 얻게 되었으니, 세월을 뛰어넘어 찾아온 혈육이 얼마나 귀했을까.
영감님은 한 스님을 찾아가 작명을 부탁했고 목숨이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산다는 뜻으로 '수한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나가던 선비도 거든다. 오래 사는 이름 '거북이'라고 지으세요. 아이를 안고 밭을 지나가자 한 농부는 천년을 산다는 '두루미'가 최고라고 한다. 마을의 훈장님은 환갑을 삼천번 지낸 사람이라는 뜻의 '삼천갑자 동방삭'이라 짓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세상에. 60이 3000번이면 무려 18만 살이다. 영감님, 이 정도면 거의 뭐 불사조 아닙니까.
어찌 되었든 영감님은 이름을 줄여 불러서도 안되고 대충 불러서도 안된다며 언제나 정확하게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이라 불러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이 유별나게 긴 이름이 도리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물에 빠졌지만, 이름을 부르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것. 천만다행으로 마을의 청년이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아이를구했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 아들을 잃을뻔한 영감님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것으로 글은 매듭을 짓는다.
얼핏 들으면 그저 재미있고 약간 황당한 이야기 정도로 여기기 쉽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면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동화임에 틀림없다.
문득, 아이 스스로는 그 이름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졌다.
이름을 다부르기도 전에 물속으로 가라앉을뻔한 그날의 일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래 살라고 지어준 그 이름 때문에 도리어 죽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마침내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자신을 지켜주는 방패처럼 느껴졌을까. 죽을뻔한 두려움과 살아남은 기쁨이 섞여 착잡한 심정이었으려나.
나도 가끔 내 욕심에 아이를 몰아세우며 뾰족하게 굴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만든 '긴 이름'때문에 혹여나 아이들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오월과 유월이도 언젠가 내 욕심과 이 실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하지만 얘들아, 내가 너희에게 주고 싶은 이름의 진짜 의미는 그저 사랑한다는 거야. 사랑. 사랑. 끝없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