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레전드의 서막을 올렸던 나의 최애 티비 프로그램,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다가 둘째 유월이가 툭 뱉은 말이었다. 그가 내뱉은 워딩을 다시 복기하자면 "저렇게 놀면서 돈 벌어서 좋겠다."였다. 아홉 살 인생의 치기 어린 시선에 나는 그만 마른세수를 하고 말았다.
애 앞에서 내가 너무 돈돈거렸나.(애미의 뒷모습은 늘 많은 말을 한다.)
요 근래 재취업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번갯불에 콩이라도 구워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급한 성미인데,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약불에 뭉근하고 걸쭉하게 끓이는 달걀찜을 끓이랍신다. 강불로 빠르게 끓였다간 구멍 숭숭 생기고 질겨진다고.
내 이름을 가진 꿈은 10여 년 동안 밀리고 밀리다 기약 없이 냉장고 속에 숨어버렸다. 엄마의 자아실현이란 장바구니 맨 밑에 깔린 으스러진 두부 같은 것.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당장 벌 수 있는 몇 푼으로 애들 학원비라도, 주유비라도, 하다못해 서민의 돌콜라대신 별다방 돌콜라를 시켜 마셔보는 것.
그게 전부다.
이렇게 소박해질 줄은 나 스스로도 몰랐다. 빅픽처를 그리겠다는 둥,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거라는 둥 떠들던 젊을 때의 패기와 혈기는 좀처럼 눈을 씻고 봐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자소서를 쓰려고 비어있는 서식을 열어놓고 이런저런 상념 속에 잠겨 있다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늘의 저녁메뉴를 고민하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열어본 냉장고 속 소비기한이 거의 다 된 두부를 보고, 으스러진 두부도 계란찜 속에 들어가면 더 부드러워지고 고소해지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나도 그럴지도 모르지. 으스러졌다고 느꼈던 시간이 더 촘촘하게 나를 채우고 있었을 수도.
그래서 지금 나는 어떤 모양의 두부일까. 아직 아무 요리도 되지 않은 두부라 근사할 것 같다. 무슨 요리든 될 수 있으니까. 상상하면서 두근거리게 되니까.
그렇다.
여전히 나는 도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