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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빵 Aug 06. 2024

돈에 미친 여자


부자 되고 싶다.


돈이 미친 듯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돈에 미친 여자인 것 같다.


남편은 때때로 갖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고 돈에 대한 욕심도 크게 없다고 말할 때가 있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면서. 하지만 돈에 관심 없다고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지 않나. 돈에 관심 없다 하는 사람을 잘 보면 돈에 미친 사람일 수 있다. 차라리 그냥 '나 돈 좋아해'라고 말하면 얼마나 솔직한가.


난 돈이 정말 좋다.


내가 봤을 때 남편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시간이다. 유튜브 볼 시간, 만화 볼 시간, 운동 갈 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 먹을 시간, 새로운 곳을 여행 갈 시간 등등. 나 또한 그렇다.



요새 아이도 아프고 아이를 봐주시던 어머님도 입원을 하게 되어 연차를 내고 며칠 쉬었다. 토, 일, 월, 화요일까지. 4일 정도를 쉬니 감기에 걸렸던 내 몸도 거의 회복된 것 같다. 평일 휴무일이 한 번씩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알차게 보내야 하는지 머리를 싸맨다. 어떻게 해야 이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까. 내 황금 같은 하루. 그래서 졸리고 피곤해 죽겠는데도 운동을 가거나 병원을 가거나 미용실을 가거나 어디 하나는 가야 마음이 놓였다. 밤에도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4일을 쉴 수 있게 되니 이게 뭐라고 조금 여유가 생긴다. 더운 것도 한 몫하여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있으니 시원하니 기분이 좋다. 느긋하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데도 짜증이 덜 난다. 이렇게 며칠이고 몇 달이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무릇 돈은 시간이란 생각이 다시 든다. 나는 이런 시간을 쓰려고 돈을 버는 것인데, 돈을 려고 시간을 다 써야 하다니. 내 시간, 내 황금 같은 시간은 돈과 맞바꿈 당하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돈을 잘 번다.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피과인 산부인과를 택해서 뉴스거리에 나오는 몇 억씩 버는 의사는 아니다. 피부미용에 뛰어든 일반의보다도 못 버는 것 같다. 그래도 내 기준에 돈을 어느 정도 버니까 더 벌고 싶단 생각이 드는데 의사일을 하면서 큰돈을 만지려면 개원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원, 그걸 어떻게 하나. 내가 개원을 한다면 주 5일도 모자라 주 7일을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환자가 없으면 없는 대로 걱정, 많으면 많은 대로 걱정. 걱정인형으로 매일매일 종종거리면서 살아갈 게 뻔하다. 병원은 한 번 개원하면 터를 잡는데도 시간이 걸려 최소 5-10년을 일해야 한다. 개원을 하고 일 년에 1주일도 휴가를 내기 어려워 매년 제주도에만 3박 4일 정도 여행 가는 개원의들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놀아야 하는데.



재수를 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의대 6년을 마치고 바로 인턴, 레지던트 생활이 이어졌다. 잠깐 일을 안 했던 건 레지던트 4년 차 때 임신을 하게 되어 아이를 낳은 것인데, 이걸 쉰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이가 돌이 되고 봉직의로 취업하여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사실 일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그냥 그만두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콤한 월급의 노예가 되어 벗어나질 못한다. 나는 명품백도 필요 없는데, 그저 피곤하지 않게 잠을 잘 시간, 운동을 할 시간, 책을 읽을 시간 정도만 충족되면 되는데, 그게 이렇게나 힘들다.



정신적 자유, 시간적 자유, 경제적 자유.

이 세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일까.


그래, 욕심을 너무 크게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저 세 가지를 다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1%도 안 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바늘구멍 같은 것을 기어이 나는 통과하고 싶은 것이다.


뭐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그 작디작은 구멍을 통과할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오늘도 돈에 미친 여자는 어떻게든 돈 벌 궁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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