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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샤랄라 Mar 28. 2024

나는 '해파리'다.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는 항상 많은 별명들이 붙었다. 별명은 내가 붙이기 보다는 곁에서 나를 지켜 본 제 삼자가 붙여 주어야 맛이다. 어렸을 적에는 별명이 붙으면 나를 놀리는 것이라 생각해서 붙은 별명을 어떻게 하면 떼어낼까 궁리했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지나 온 날들과 함께 나에게 붙은 별명들을 생각하니 이 또한 애정어린 관심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기억을 더듬어 나에게 붙었던 별명들을 곱씹어 보자니, 생각이 잘 나진 않지만 잠깐 있었던 국민학교 시절 동네를 누비며 해질녘까지 놀던 시절에 동네 남자아이들이 나에게 붙여줬던 별명 하나 만큼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름하여 '불여시' 남자아이들이라고 봐주는 것 없고, 승부욕이 넘쳐서 무조건 이겨야 직성이 풀리던 나에게 함께 동네를 누비던 남자아이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여자아이들을 모아 고무줄 놀이라도 하고 있으면 꼭 얼쩡대던 녀석들이 있다. 그냥 얼쩡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안달난 녀석들이다.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끝까지 쫓아가서 응징을 해주고 나서야 고무줄 놀이를 다시 한다. 내가 눈에 불을 켜고 득달같이 쫓아가는 그 집념에 재미가 붙어 그렇게도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지나고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불여시'를 시작으로 나의 별명은 결코 순했던 적은 없었던 듯 하다. 사실 그게 별명 붙이는 맛일 테지만, 당장은 학창시절에 나에게 붙었던 별명들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뒤적여 볼 기록도 없으니, 난감하다. 가족을 소환해서 데이타베이스를 좀 확보해야 한다. 어쨌든 대학을 가겠다고 공부에 불이 붙어서 경주마처럼 달리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서도 나의 대학생활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불안했던 가정사를 뒤로 하고, 빨리 철이 들었기에 오로지 내 눈 앞에는 주어진 목표 달성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런 나의 대학생활을 반영해 주는 별명이 동기가 붙여 준 '스터디머신' 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인생 과제를 해내기에 급급했던 젊은 날의 나의 초상을 들킨 것 같아서 씁쓸하면서도 어쨌든 학업에 매진했던 내 모습을 인정해 준 별명인지라 나에게는 훈장과도 같다. 


바지런한 이십대 초반을 보내고 그 이후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한 남자는 계속해서 나에게 별명을 붙여 준다. 한참 연애할 때에는 '복분자'로 불리웠다. 그냥 소주는 아주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첫 맛이 병원 알코올 냄새를 동반하는 쓰디 쓴 맛이어서 그닥 손이 안갔고 맥주 또한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첫 맛부터 달달하니 목넘김이 기가 막히게 부드러운 바로 그 순간-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에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 술이었다. 그럼 연애하고 있을 당시니까, 분위기라도 내볼까 해서 와인 좀 마시는 척 해보려 했더니 이것도 영, 어렵다. 그렇게 술은 나에게 어려운 존재였다. 분위기 맞추려 잘은 마시는데, 그렇다고 딱히 정은 붙지 않는, 술 앞에서 나는 쇼윈도부부 같은 행세를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와인과 흡사하면서도 한국적인 '복분자'를 시도해 봤는데, 단번에 뿅갔다고 해야할까. 이것은 나의 술이었다. 지금도 커피는 '바닐라라떼'를 마실 정도로 달달함에 환장하는 나에게 복분자는 너무 맛이 좋은 술이었다. 진하다 싶으면 소주를 살짝 섞어도 그 향과 맛이 사라지지 않으니 한창 때에 애정하는 술이 되었고 자연스레 '복분자미성' 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 날수록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고 나를 에워싸던 벽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본디 털털하고 거리낌없는 나의 자유로움이 그의 눈에 비춰졌으리라. 그렇게 붙은 두번째 별명은 바로 '손많녀'다. 풀어서 쓰면 '손 많이 가는 여자', 쪼금 과하다 싶으면 '손 드럽게 많이 가는 여자'다. 짬뽕을 먹다가 옷에 튀는 일은 다반사, 계단을 내려 오다가 계단 턱이 하나 더 있는 거 못보고 넘어질 뻔하질 않나, 걸어가다가 구두 굽이 껴서 신발을 버리고 걷질 않나 눈만 돌리면 어느새 사고를 치고 있다. 세상 똑똑한 척은 혼자 다 끌어와서 하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수가 없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츤데레' 마냥 챙겨 줄 거 다 챙겨주면서도 그는 푸념섞인 별명을 만들어 놓았다. 이 마저도 두 아이 키우면서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바라보는 당사자 눈에는 아마 아직도 멀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나는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자리라 생각하면 나의 욕망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해파리'가 된다. 속이 뻔히 드러나 보이는 '해파리' 상황마다 내가 채워야 할 만족은 언제나 분명하기에 그러한 만족이 채워지면 나는 해파리처럼 투명해진다. 나만이 느끼는 충족감과 온전한 만족감이 그 앞에서 만큼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 욕구는 대게 원초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고차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다. 어쨌든 그와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밀당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지만, 그 밀당도 단 번에 해제되기 일쑤다. 그렇게 내가 서서히 해파리 마냥 투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감정을 꽁꽁 숨기거나, 이를 풀어내지 못해 돌려 말한들 관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세월 터득했기에 그리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내가 나를 포장할수록 괴로운 건 나이기에 어김없이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느끼는 자유분방함과 해방감이 좋아서. 당분간 나는 '해파리'로 살 것 같다. 이후에는 또 어떤 별명이 붙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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