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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 헤라 Aug 18. 2023

나의 SH언니에게, 언닌 우리 집 고유명사예요.

  어렸을 적부터 나는 늘 엄마한테 나도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언니 만들어 달라고 종종 졸랐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지금 낳아도 언니가 될 수는 없다며 항상 현실을 콕 집어주셨다.     

그러나 40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엄청 부자고 엄청 쿨 하기까지 한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친언니는 아니지만 친언니로 삼고 싶은 마음이 부자인 SH언니가 있다. 언니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가을 한 연구소에서였다. 그 시절 언니와 나는 한창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단지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면 언니도 나도 학부 졸업 후 이렇다 할 실험 스킬이 없는 상태에서 도와줄 선배도 없이 가르쳐 줄 사람 없는 상태에서 동물실험에 던져졌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과 함께 엄청 힘든 현실을 같이 헤쳐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리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결혼, 임신, 출산하며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언니는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언니도 아이들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힘들고 지칠 때면 귀신같이 알고 나에게 연락했다. 그러면 나는 언니한테 

  “내가 보이는 거예요.”라며 진지하게 물어보곤 했다. 

그럼, 언니는 유쾌하게 

  “너는 내 손바닥 안이야 다 보여.”라며 나의 진지함을 유쾌함으로 받아쳐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같이 캠핑을 떠났다.

아마 우리 가족만 가는 거였다면 나는 당연히 가지 않았을 것이다. 씻기도 불편하고 화장실도 불편하고, 거기에 벌레까지..

그런데 언니가 같이 가자고 하니 왠지 그런 불편함쯤은 감수할 만할 거 같았다.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게 고기도 구워 먹으니 불편함은 그럭저럭 감수할 만했다. 단지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형부가 “SH 야.”를 정말이지 1분에 한 번씩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언니한테 아직도 저렇게 이름을 불러주고 자꾸 찾아주니 얼마나 좋으냐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언니는 좋으냐며 내가 너 이름 1분에 한 번씩 불러줄까 라며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니라 다른 때에도 캠핑 가서 아마 10분이면 옆 텐트에서 언니 이름을 다 알 거라고..     

 

  그렇게 언니는 귀차니즘이 만땅이라 혼자 외출도 잘하지 않는 나를 종종 콧구멍에 바람 쐬라며 밖으로 불러내 준다.

어떤 때는 남대문으로 어떤 때는 딸기 가득 뷔페로....

그리고 내가 아플 때도 아이 때문에 고민이 있을 때도 언니는 귀신같이 알고 나에게 전화한다.     

  “호레이 뭐 해?”라며     

 언니는 항상 나를 호레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내 이름을 종종 깜빡한다고 했다. 한 번은 나한테 보내는 택배의 받는 사람 이름에 호레이라고 쓰고 몹시 당황해 내 이름을 생각했는데 생각이 안 나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호레이라고 써서 보내야 하나 하다가 한참 만에 내 이름이 생각났다고.. 호레이라고 쓰자 택배 아저씨께서 사람 이름이 호레이라면 묻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종종 언니를 만났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는 언니를 만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젠 남대문시장에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니가 아이 옷 쇼핑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들 옷을 편히 살 수 있다. 

(언니와의 쇼핑이 없어져서 아쉽지만 그래도 언니 덕분에 편히 옷을 사고 있다.)

  “언니 나 어디 옷이 필요해요”라고 하면 언니는

  “음 사진 찍어서 보내봐.”라고 하고는 바로 구매할 수 있게 해 준다. 심지어 아이들 입혀봤는데 이건 사이즈가 작게 나왔어, 혹은 크게 나왔다며 리얼 리뷰도 해준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어찌나 꼼꼼히 검수해서 보내주는지 의심병이 있는 내가 다시 확인을 안 해도 될 만큼 꼼꼼히 해서 보내준다.     

 


  코로나 전 언니와 나는 단둘이 부산으로 기차 타고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다. 오가며 기차에서도 부산에 도착해서도 우린 잠자는 시간만 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아마 이때도 나는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두고 부산으로 훌쩍 떠났던 것 같다. 그리고 부산에서 가서 바람을 쐬니 숨이 좀 편히 쉬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기도 부끄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정도로 내 이야기가 재미있지도 않아서다. 그런데 언니와는 1박 2일 아니 한 한 달 쯤도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정도로 있는 그대로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언니를 좋아하니 남편도 아이들도 이젠 SH언니를 자신들의 절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SH언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인지 남편도 아이들도 누구 엄마 혹은 SH 씨, 누구네 이모 대신 모두 ‘SH언니’라고 부른다. 우리 엄마도 SH언니라고 부르신다.

통화할 때 가끔 딸내미는 옆에 있다가 ‘SH언니’랑 통화하냐며 웃고 지나간다. 

(언니는 나의 최다 통화상대이다.)     

 


  언니는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요즘 좀 힘들다고 했을 때도 도움 안 되는 위로의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좋았다. 대신 약 먹어서 좋아지면 된다고 요즘은 우울증 그렇게 큰 병도 아니라며 언니 지인도 우울증 약 먹는데 그분도 약 먹고 많이 편해졌다며 나의 불안한 마음도 가라앉혀 주었다.

  

  언니도 나도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지만 지금 우린 둘 다 그만두고 주부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의 힘듦을 언니가 더 잘 이해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언니도 어쩜 나만큼 답답하지 않을까 혹시 언니도 힘든데 내가 내 이야기하는 것에 급해서 내 마음 풀 곳 없어, 언니에게 나의 가슴속 돌덩이까지 얹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아마 언니한테 이런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아니라고 언니한테라도 이야기하라며 넉넉한 마음을 또 나누어 줄 거다. 

사는 곳이 멀고 그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해 너무 보고 싶은 나의 SH언니는 생각만 해도 고맙고 미안한 존재다.     

   “SH언니 고마워요. 언니는 우리 집 고유명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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