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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pr 10. 2024

엄마의 이혼(사별)스토리

내가 무서웠던 것은 엄마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유트브 알고리즘을 통해, 한 연예인의 딸이 자신이 아빠가 새로운 여자를 만날 때, 버려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영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브런치로 링크를 열고 들어왔다. 갑자기 마음이 동하는 게 있었는데, 그게 뭔지 혼란스럽다. 정작 제목을 엄마의 이혼...까지 쓰고 나니 엄마는 이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왜 이혼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을까. 다시 말해, 엄마의 이혼으로 말미암아 내가 두려웠다고 느꼈다고 쓰려고 했을까. 그럼 차분히 솔직하게 스토리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때는 어느 겨울이었다. 10살쯤으로 기억되는데, 바깥이다. 찬바람이 불고, 공기마저 차가운 바깥에 엄마가 나를 붙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맞다. 울부짖었다. 우는 모습에 원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같이 죽자'가 그때 엄마한테 들은 말이었다. 하늘 같은 엄마는 그렇게 나를 힘으로 밀어붙였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두운 야밤, 이불속에서 움직임을 느끼고 깨어났다. 움직임과 함께 야릇한 소리와, 남녀 사이 잘 맞아떨어지는 호흡박자가 오갔다. 십센치 옆에서 들리는 소음이었다. 그때는 무슨 용기로 그렇게 일어났을까. 그냥 잤다면 밖에서 추위에 떨 일은 없었을까. 언제나 일은 좋은 면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그 소리가 혐오스러워서인지, 무서워서였는지 그냥 울음이 터졌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엄마가 더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정조를 잃어버린 엄마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행운아라고 엄마는 늘 말했다. 태어나서 한 돌도 안 됐을 때, 나는 영양실조에 걸렸는데, 나는 엄마 젖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젖을 곧잘 받아먹었단다. 그래서 다시 지옥의 문앞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말하고 싶은 행운은 다름아닌 커다란 재운(폭력사태)을 내가 막았던 것이다. 내가 열심히 울었던 덕분에, 그 남자와 엄마의 하루밤 정사는 허사로 돌아갔다. 울고불고 난 후 엄마는 추웠는지,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나도 너무 추워서 온 몸이 꽁꽁 언 채로 집에 들어왔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속에 마주한 건 아빠였다. 아빠는 방금 저 멀리 알레스카 대륙에서 돌아왔다 200달러와 함께. 


덕분에 그 날 집안의 평화는 지켜졌다. 아빠는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남자와 엄마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남자는 스윗한 남자였다. 소근소근 속삭이는 목소리와 화려한 언변, 손재주까지 뛰어나 진짜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아빠가 아닌 걸. 그 분이 집에 올 때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엄마는 불친절하다고 꾸짖었고 인사를 강요했다.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나는 더 고집이 센 아이었다. 그 분이 오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거나, 집안에서 분주히 다니거나 안 하던 숙제를 하거나 하면서 무시로 일관했다. 


두려움. 

엄마가 나를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너무 두려워서 엄마를 내 통제권에 두고 싶었다. 엄마가 나만 바라봤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은 이 세상에서 내가 너를 제일 사랑해였다.   


그나저나

엄마는 이혼하는게 훨씬 나았을까? 

그랬을까? 

엄마도 힘들었을까? 

외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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