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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KIM 제킴 Nov 01. 2023

틀을 깨고 나가다.

정체성을 다시 정하다.


그림은 생각해 보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를 지탱해 주는 가장 큰 자아의 일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와 주고 여러 좋은 기회와 성취를 준 건 그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나와는 떼놓을 수 없는 운명적인 동반자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 스스로 제한하고 있던 것이나 클루지가 뭘까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그림이었던 것 같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어릴 적부터 쭉 자라왔고 예체능 계열이기에 늘 남들보다는 조금은 더 특별하게 분류되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나는 특별하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라는 게 스스로에게 면죄부가 되었고 그림 그리는 일 외에 다른 여러 분야의 일들에서 부족한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별로 느끼지 않았었다.



다행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그래도 하나의 특별한 재능인 그림이 있었기에 노력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좋은 기회도 찾아왔고 좋은 성과도 있어 왔었다. 그럴수록 또 내 안에는 난 그림만 잘 그리면 돼.라는 잘못된 믿음이 점점 더 뿌리 깊게 내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뿌리 깊은 믿음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그림 실력으로만 보면 점점 더 나아졌고 이제 테크닉적으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 그 이상으로 발전하기 힘든 정도가 되었다. 사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대단한 성과로 볼 수 있긴 하지만 거기에서 난 막막한 벽을 마주했다.



단순히 무언가를 잘한다는 그 재능만으로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 위해선 진짜 천재이거나 무언가 다른 게 더 필요하다. 난 재능이 있긴 했지만 천재는 아니었고 꾸준히 그려서 차근차근 발전해 왔을 뿐 작가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뭔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놓이고 계속 발전하던 성과에도 뭔가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그림만 그렸는데 그것만으로는 다음 더 큰 도미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게 정체가 되고 이상하리만큼 실패가 계속되어 가던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스스로 가두었던 틀 안에서 다른 길을 향해 깨어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짧은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그 틀 속에 나의 모습을 확실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그동안 그림이라는 틀로 내 세계를 확장시켰지만 그만큼 더 견고하게 그림이라는 틀 안에서만 내가 지내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는 그림만 그리며 살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나의 가장 큰 무기와 열정은 그림에 있지만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나의 단점들과 나는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가두었던 여러 영역의 부분들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고 있다.



아티스트 예술가라는 틀을 깨고 사업가로 정체성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때론 글작가로 정체성을 만들어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써보기도 하며 말이다.



그동안 내가 제한하고 있던 나의 다른 가능성과 다른 타이탄의 무기들을 이제는 골고루 갈고닦아볼 생각이다. 그 무기들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새로운 아이템이 된다면 나의 가장 큰 무기인 그림도 결국엔 더 한 발자국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by. J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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